<가족의 재편> ①핵가족마저 분열하는 사회



(자료사진)

미혼 확산·출산 기피에 1~2인 가구 증가세 뚜렷

20년 뒤에는 10가구 중 7가구꼴 1~2인 가구 전망

(서울=연합뉴스) 기획취재팀 = 핵가족이 무너지고 있다.

미국의 인류학자 조지 피터 머독이 저서 '사회 구조(Social Structure·1949)'에서 '핵가족(Nuclear Family)'이라는 용어를 썼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핵가족이 붕괴하는 현상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은 '더 쪼갤 수 없는, 가족의 최소 단위'로 여겨졌기 때문.

핵가족 형태의 가족은 근대 이전에도 있었으나 근대 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일반화했다. 남편은 밖에서 돈을 벌고 아내는 가사를 맡는 '역할 분담' 모델을 기반으로 해 사회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기초단위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핵가족마저 파편화하고 있다. 핵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1~2인 가구가 이미 전체 가구의 절반에 이르렀고 이런 추세는 앞으로 가속화할 전망이다.

학계 일각에서는 전통적 대가족과 핵가족에 이어 1인 가구가 '제3의 가족' 형태로 등장했다면서 가족 구조의 '혁명'이라고 일컫고 있다.

이 혁명은 인구 고령화, 사별에 따른 독거노인의 증가에만 기인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 비혼(非婚)의 증대, 출산ㆍ양육 기피, 이혼의 증가 등이 복합된 결과다.

◇1인 가구 증가의 핵심은 미혼 확산 = 회사원 김지연(32·여·가명)씨는 이른바 '골드미스'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도 없지만, 꼭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현재의 내 생활이 편하고 앞으로도 혼자 잘 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결혼한 선배들을 보면 애 키우기도 너무 어렵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도 어렵고…. 아이한테 투자할 돈과 시간, 에너지를 나를 위해 쓰면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좋은 남자를 만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도 있겠죠."

김씨처럼 결혼 적령기를 맞이하고도 결혼하지 않는 미혼인구는 1인 가구 증가에 '1등 공신'이다.

통계청의 '2010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의 가구 수는 총 1천733만9천가구로 이 가운데 1~2인 가구가 48.2%에 이른다. 2인 가구가 420만5천가구(24.3%), 1인 가구가 414만2천가구(23.9%)였다.

전통적 표준가구에 해당하는 4인 가구(부부 + 미혼자녀 둘)는 22.5%(389만8천가구)로 그다음이었다. 2005년 조사까지만 해도 4인 가구가 27.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1~2인 가구에 밀린 것.

20년 전인 1990년 '4인 가구(29.5%)-3인 가구(19.1%)-5인 가구(18.8%)'가 주류였던 점에 비춰보면 급격한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1990년 1인 가구와 2인 가구의 비중은 각각 9.0%, 13.8%에 불과했다.

핵가족 해체 현상은 가구의 구성 유형에서도 확인된다.

전체 가구 가운데 부부 가구가 17.5%, 독신 가구가 23.9%, 편부모 가구인 모자가구와 부자가구가 각각 7.2%, 2.0%로 이를 모두 합하면 50.2%에 달한다. 과반이 전형적인 핵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이다.

1~2인 가구가 이처럼 급증한 이유는 뭘까?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영철 부연구위원 등이 작성한 '가구 유형 변화에 대한 대응방안'에 따르면 최근 10년 사이 1인 가구 증가에 가장 크게 기여한 요인은 미혼율 증대다.

10년간 1인 가구가 191만7천가구 늘었는데 그 가운데 미혼 상태의 1인 가구가 88만6천가구 늘어 증가분의 46.2%로 가장 많았다. 사별은 22.3%, 이혼은 17.6%였다.

미혼 1인 가구 증가는 남성에서 더 두드러졌는데 남성 1인 가구 증가의 54.5%가 미혼 탓이었고 이혼 탓인 경우는 19.0%였다. 여성은 미혼이 37.6%, 사별이 36.0%, 이혼이 16.2%를 차지했다.

2인 가구의 증가 원인으로는 '자녀 분가'에 따른 고령부부의 증가와 이혼ㆍ분가 확산에 따른 편부모 가구의 증가가 꼽혔다. 10년 사이 증가한 2인 가구 중 부부만으로 이뤄진 2인 가구가 61.5%를 차지했고 모자가구가 18.7%, 부자가구가 7.0%를 차지한 것이다.

◇20여년 뒤에는 10가구 중 일곱이 1~2인 가구 = 통계청의 '장래가구추계: 2010∼2035년'은 더 어두운 미래를 제시한다.

2035년 국내 총 가구는 2천226만1천가구로 30%가량 늘지만, 평균 가구 구성원 수는 2010년 2.71명에서 2035년 2.17명으로 줄어든다.

1인 가구가 34.3%(762만8천가구)로 늘어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로 자리 잡고 2인 가구(34.0%·757만9천가구)가 그 뒤를 잇는다. 3인 이상 가구 비중은 31.7%에 그친다.

10가구 중 7가구꼴로 전통적인 '표준가족' 범주에 들지 않는 1~2인 가구인 셈.

가족 구성원을 기준으로 유형을 나누면 2010년에는 '부부 + 자녀' 형태의 가구가 37.0%로 가장 많았으나 2035년에는 20.3%로 비중이 작아진다.

대신에 1인 가구(34.3%)와 부부로만 이뤄진 2인 가구(22.7%)가 1, 2위가 된다.

통계청 관계자는 "부부 가구는 자녀를 갖지 않은 가구보다는 주로 자녀를 독립시킨 뒤 노부부만 남은 가구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앞으로 증가할 1인 가구는 미혼보다는 고령화 탓이 될 것으로 통계청은 분석했는데 통계청 관계자는 "2035년까지 65세 이상 1인 가구는 연평균 9만5천가구씩 늘어 전체 1인 가구 증가의 68.3%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 이미 거쳐 간 길…한국은 '과속' = 1인 가구 증가는 우리나라만의 상황이 아니다. 가깝게는 일본부터 유럽·북미 선진국들이 이미 겪은 현상이다. 그만큼 되돌리기 어렵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KDI의 '가구 유형 변화에 대한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2006년 기준 1~2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65%를 차지했고 3~4인 가구는 29%에 불과하다.

독일은 2005년 기준 1~2인 가구가 71.4%, 3~4인 가구가 24.8%였으며 가장 먼저 가족 해체가 진행된 북유럽 국가 중 한 곳인 스웨덴의 경우 2009년 이미 1인 가구의 비중이 48.6%에 달했다.

김연수 KDI 부연구위원은 "유럽에서도 만혼, 이혼 증대, 고령화, 독거노인의 증가 등으로 말미암아 1~2인 가구가 늘고 있다"며 "다만 유럽은 이런 변화가 점진적이었던 데 비해 우리는 급속하게, 압축적으로 겪고 있다는 점이 차이"라고 말했다.

또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인 가구의 부상은 대가족, 핵가족에 이은 제3의 가족 혁명이라고 할 만하다"며 "기존 개념과 다른,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늘어나는 현실을 인정하고 정책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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