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hough Jesus existed from all eternity, he was a real person. He was seen by John and others, who were eye-witnesses to his glory. They touched him and knew that he was real. They herad him with their ears as he spoke the words of life. Everything they said and wrote about him was based on factual data. [NRSV, Harper study bible p1830]
(2)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John1:1). Christ was the incarnate Word, in contrast to the written Word, the Bible. The incarnate Word is eternal and is both with God, yet distinct from God. The Word is identical in essence to God the Father and to God the Holy Spirit. The Word had a role in creation(Col1:16; Heb1:2;11:3). The Word became flesh(i.e., God became human); Jesus is thus the God-man. "For in him the whole fullness of deity dwells bodily"(Col2:9). The incarnate Word is made known to people through the written Word.
2 and the life was manifested, and we have seen and testify and proclaim to you the eternal life, which was with the Father and was manifested to us--
3 what we have seen and heard we proclaim to you also, so that you too may have (1)fellowship with us; and indeed our fellowship is with the Father, and with His Son Jesus Christ.
(1) 여기서 사귄(fellowship)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본문에 나타나 있듯, 이 글의 핵심적 목적은 '사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헬라어로 사귐이란, '코이노니아' 즉, '교제'라는 의미이다. 교제는 곧 교회를 뜻하며, 이는 곧 지체 - 몸 - 성찬으로까지 연결된다. 다시 말해 사귄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한 몸이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단순히 우리가 일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통성명을 하고, 전화번호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알게되는 그러한 관계를 말하는게 아니다. 내 허물, 수치심, 컨플렉스, 교만, 자랑, 에고, 가장, 가식 등등 나를 온통 싸메고 있는 포장들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그 대상과 일심동체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사귐이다. 그 상태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이 보는 것이 곧 내가 보는 것이요, 내게 들리는 것이 곧 하나님께도 들리는 것이다.
4 These things we write, so that our (1)joy may be made complete.
(1) 여기서 기쁨(joy)은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기쁨이다. 물론 세상에도 수많은 기쁨과 쾌락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이며, 오히려 더 큰 기쁨을 갈급하게 될 뿐이다. 마치, 마약을 시작하게 되면 점차 몸에 내성이 생겨 점점 더 그 복용량이 많아져야 동일한 느낌을 가지게 되듯,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 또한 끝없이 커져야 한다. 물론, 이러한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욕망으로 지금의 문명이 이뤄질 수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점점 더 발달해 가는 - 혹은 발달한다고 믿고 있는 - 문명 속에서 인간은 더 행복해 지고 있지는 않다. 행복에게는 항상 불행이라는 그림자가 따라다니기에, 더 큰 행복일수록 더 큰 불행이 따른다. (언제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인간에게는 단언컨대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흔히 어머니의 사랑을 무조건적인 사랑, 아가페의 사랑으로 비유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어머니가 과연 나의 온 마음 구석구석까지 다 알고 계시며 이해하실까. 물론, 세상의 그 어떤 사랑보다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하며 존경해 마지 않는다. 다만, 어머니 역시 사람이기에 나에게로 향한 그 분의 사랑에도 분명코 한계가 있음을 우리는 안다. 이러한 세상적, 인간적 기쁨과 만족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으시다. 그렇기에 그 분의 사랑을 체험할 때, 우리는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5 This is the message we have heard from Him and announce to you, that God is Light, and in Him there is no darkness (1)at all.
(1)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 분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나는 빛을 믿음, 어둠을 '죄' 즉 인간의 '교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교만'의 정의인데, 나는 믿음과 교만의 차이는 나의 의식의 패러다임이 하나님 중심인가, 내 중심인가 차이라고 본다. 따라서 전자는 믿음이며, 후자는 죄 즉 교만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중심적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사랑의 표현이 제각각일 뿐이지,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믿음은 바로 그 본능을 뒤집어 엎기를 원한다. 본능에 따라 사는 삶은 동물과 차이가 없다고 우리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인간에게는 동물에게 없는 이성이 있다. 여기서 이성은 생각, 혹은 자유의지, 혹은 양심 등등 매우 많은 설명들이 있지만 쉽게 이해하자면 본능을 제어하는 능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따라서 인간은 본능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들이 모두에게 있다. 다만,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안다. 어둠에서 빛으로 가기 위해서는 결국 나의 본능과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까지 뛰어넘어야 하니 -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다 -, 일생을 그렇게 살기 위해 다 바쳐도 완벽하게 이뤄낸 사람은 없었다. 다만, 나의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가는 누구든 충분히 결단할 수 있다. 빛으로 향한 삶이냐, 어둠으로 향한 삶이냐.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느냐는 천지차이다. 어차피 인생의 최종 목적지는 이생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 심판의 날에 이뤄지는 것을 감안할 때, 방향성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가. 따라서 늘 항상 하나님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다. 왜 굳이 그렇게 힘들게 사느냐고. 단순하게 살라는 인기 베스트셀러처럼 인생을 단순하게 즐겁게 살면 안되냐는 것이다. 괜히 이해하기도 힘든 패러다임 운운하지 말고, 또 괜히 인생 숨막히게 조이지 말고 말이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그렇게 사는 삶이 숨막히는 것이 아닌 오히려 더 자유롭고 신난다. 마치 물 속에서 아가미를 단 듯한 그런 느낌 - 사실 그런 느낌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 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6 If we say that we have fellowship with Him and yet walk in the darkness, we lie and do not practice the truth;
7 but if we walk in the Light as He Himself is in the Light, we have fellowship with one another, and the (1)blood of Jesus His Son cleanses us from all sin.
(1) Christians do sin after they have been converted and thus must be cleansed from their sins day by day. John says this cleansing (1)is accomplished through the blood of Christ, (2) requires confession of our sins to God, and (3) removes from us every wrong we have done. [NRSV, Harper study bible, p1830] 인간의 나약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돌아서면 받았던 은혜를 잊고, 다시 죄된 본성으로 돌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건 내 얘기다. 혹은, 성령의 체험을 받고 뜨거운 신앙의 열정에 사로잡혀 있다가도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마음이 식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왜, 이스라엘 사람들도 출애굽 당시, 홍해가 갈라지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만나로 먹여주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도우심을 눈으로 목격하면서도 결국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가. 그것이 꼭 내 모습과 동일함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 이처럼, 인간은 끝없는 자신의 부족과 나약함을 안고 있기에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은혜를 구해야 한다. 구체적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가장 기본은 기도라는 것이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라는 말처럼, 끊임없이 호흡함으로서 내 영이 살게 되는 것이다.
8 If we say that we have (1)no sin, we are deceiving ourselves and the truth is not in us.
(1) 쉽게 얘기해서 자만이다.
9 If we (1)confess our sins, He is faithful and righteous to forgive us our sins and to cleanse us from all unrighteousness.
(1) 자백, 즉 마음 속의 것들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상담의 기본 역시 내담자가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말을 하게 하는데 있고, 중독의 기본 역시 자신이 무엇에 중독되어 있는지 고백하는 것이 곧 치료와 회복의 첫단계라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숨기고 싶은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단계를 넘어설 때에야 비로서 참된 회개가 이뤄지며,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
10 If we say that we have not sinned, we make Him a liar and His word is not in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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