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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가 현실로...뇌에 다운로드 '초능력'
가까운 미래에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 나온 인물들처럼 새로운 능력을 두뇌에 다운로드해 기능을 습득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에따라 무술을 하는 방법, 비행기 조종술, 다른 나라 말을 하는 법 등을 정신차리고 배우지 않아도 저절도 깨치는 일이 멀지 않은 미래에 가능해질 전망이다.
미 보스턴대와 일본 교토소재 ATR 컴퓨터신경과학연구소 합동연구팀은 조만간 새로운 능력을 습득하기 위해 컴퓨터앞 의자에 앉아 업로드하는 것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전했다. 이같은 내용의 논문은 12월 9일자 사이언스지(http://www.sciencemag.org/content/334/6061/1413.full)에 실려있다.
연구진은 사람들의 두뇌활동패턴을 바꾸는 신호를 보내는 기능성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이용해 어떻게 기계가 시각피질에서 지식을 흡수하는지를 알아냈다.
이 과정은 뉴로피드백 해독, 또는 데크네프(Decoded Neuro feedback· DecNef)로 불리는데 두뇌활동의 패턴을 변화시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시각피질을 자극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저글링 전문가를 불러 fMRI기기에 오게 한 후 저글링하는 것을 상상토록 한 후 그의 두뇌활동 패턴을 포착해 이 정보를 다른 누군가에게 보낼 수 있다.
연구진들은 실험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fMRI를 이용, 자원자들을 대상으로 시각능력 테스트를 한 후 이 결과를 테스트받지 않은 다른 그룹과 비교해 보았다.
그결과 연구진은 이 새로운 기술을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시각능력에 있어서 엄청난 향상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즉 이 기술을 현실화시킨다면 영화 매트릭스 속 주인공 ‘네오’처럼 몇 분 안에 무술의 달인이 되거나 오랜 기간 훈련하지 않아도 유능한 축구선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짐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진들은 fMRI를 이용해 실험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좋은 점수를 받았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들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또 "사이코패스는 세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며 이들도 치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fMRI를 적용해 능력을 받아들이는 데는 어떤 의약도 필요하지 않으며, 이 실험을 하는 대상은 깨 있을 필요도 없다. 다만 기계로 원하는 사람들의 두뇌활동을 원하는 패턴으로 바꿔주게 되는 것 뿐인데 이를 통해 누구나 원하면 미식축구 스타처럼, 또는 체스명인이 될 수 있다.
연구를 이끈 보스턴대의 와타나베 타케오교수는 “어른의 초기 시각영역은 매트릭스에서처럼 다운로드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잘 형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주인공들이 컴퓨터플러그를 몸에 꽂아 그들의 두뇌에 새로운 기능을 직접 다운로드해 새로운 기능을 배우는 내용이 나온다.
“불가능은 없다” 양자미션5
과거에 동서양을 연결했던 비단길, 모든 산악인들의 꿈인 히말라야, 그리고 좁은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가는 길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어떤 목적지를 향해 멀리 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먼 길을 이동하기 위해 비용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물리학적으로 ‘이동’의 정의는 단순하다. 어떤 경로를 ‘연속적으로’ 거쳐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동 과정 자체는 쉽지 않다. 반드시 대가(에너지)를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기묘한 세계로 가면 이동의 중간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이를 ‘공간이동(teleportation)’이라고 한다.
‘스타트렉’ 등 영화에서 우주선이나 사람이 순식간에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놀랍게도 공간이동은 실제 과학이론을 통해 예측됐고, 실험에도 성공했다.

공간이동은 1993년 IBM의 과학자 찰스 베넷이 이론적 기초를 세웠고, 4년 뒤인 1997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의 안톤 자일링거와 이탈리아 로마대의 프란시스코 데 마르티니가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이들이 사용한 방법은 원본과 완전히 동일한 물체를 먼 곳에서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엄밀히 말하면 ‘복사’에 가깝다. 하지만 양자(이들은 일상적인 물체가 아니라 광자를 이용했다)는 정보만 같으면 완전히 동일하다는 명제가 있기에 사실상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일상적인 물체 역시 양자(입자)로 이뤄져 있으므로, 양자공간이동은 물체 또는 사람을 공간이동시키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어렵지만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서울에 사는 동규가 광자 A를 미국 LA에 사는 제시카에게 공간이동으로 전송하려 한다. 앞서 말한 대로라면 제시카에게 똑같은 정보를 지닌 광자를 만들어 주면 공간이동이 완료된다. 이 글에서는 단순화시켜 광자의 ‘스핀’이라는 정보만 전송한다고 하자.

남은 문제 우리 몸도 공간이동시킬 수 있나
1997년 인스부르크대 연구팀이 처음 실험에 성공한 이후 다른 연구팀들이 2004년에는 600m, 2010년 5월에는 16km까지 거리를 늘린 실험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스타트렉’처럼 거시세계에서도 공간이동이 가능할지가 궁금해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은 먼 얘기다. 자동차만 해도 10억×10억×10억 개가 넘는 입자들로 이뤄져 있다. 1027개에 달하는 입자들을 이런 식으로 일일이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과학은 수많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면서 진보해 왔다. 택배업체들이 공간이동업체로 업종전환하는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 믿는다.

양자와 중력은 20세기 초 물리학의 혁명을 이끈 두 단어다. 19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빛이 가진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으며, 최소 단위가 있다는 실험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맥스웰이 전기력과 자기력을 통합하면서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두 가지 발견은 모두 당시까지의 세계관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이 문제는 각각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발견으로 단숨에 해결됐다. 20세기 현대과학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양자역학은 초기에 수학적으로는 불완전한 형태로 시작했다. 하지만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발전을 거듭했고, 이를 통해 힘과 물질에 대한 궁극적인 이해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또 자연계의 모든 원소와 이들의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가능해지면서 반도체, 초전도체, 레이저, MRI 등 여러 분야에 응용됐다. 현대 화학과 분자생물학 등 새로운 연구 분야도 가능해졌다.
초미시세계의 궁극적인 단위 물질, 즉 쿼크와 이보다도 작은 초끈에 대한 탐구도 이어지고 있다. 양자역학과 반대로 상대론적 중력이론, 즉상대성이론은 처음부터 수학적으로 완벽해 보였다.
우주의 팽창과 대폭발(빅뱅) 우주론, 우주배경복사, 블랙홀의 존재 등을 알려주며 성공적인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지금 이론가들의 눈에는 새로 풀어야 하는 난제 중의 난제로 남아 있다. 왜일까?

양자론은 모든 것이 파동 이라고 말한다. 파동의 가장 중요한 성질은 연결돼 있는 모든 곳으로 퍼져 간다는 것이다. 연못에 돌을 던져 큰 물결을 일으키면 연못의 모양이 아무리 구불거려도 구석구석까지 물결이 도달한다. 파동의 다른 중요한 성질은 ‘파동이 있는 위치는 대략적으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물결의 높고 낮은 곳, 빠르고 느린 곳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물결이 ‘정확히 어디에 있고 어디를 거쳐서 어디로 간다’고 말할 수 없다. 즉 파동은 특정한 궤적을 그리며 움직일 수 없다.
또 물결과 물결은 쉽게 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물결과 물결 파동의 진행이 서로 상쇄되거나 합쳐지면서 마치 궤적처럼 보이는 형상을 만들기도 한다. 지진해일(쓰나미)이 그 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황에 따라 생기는 비슷한 모습의 결과지 근원적인 현상은 아니다.
전자, 양성자, 중성자, 광자 역시 이러한 형태로 움직인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중력이론에서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입자와 입자, 천체와 입자, 천체와 천체 사이의 거리와 힘, 그리고 이들이 지나는 궤적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이는 ‘파동은 궤적을 그릴 수 없다’는 원칙과 부딪힌다. 하지만 이는 중력 이론이 잘못됐다기보다는 ‘거시적인 물체에서는 왜 궤적이 가능해지는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양자적인 물체(입자)들이 많이 모여 거시적인 물체를 이룬 경우 양자역학이 어떤 현상을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블랙홀에서 에너지가 나온다-끊임없이 입자와 반입자가 쌍으로 태어났다 다시 합쳐져 소멸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만약 입자와 반입자
중 하나가 사건의 지평선에 들어가면 남은 입자 또는 반입자는 소멸하지 않고 방출된다. 이것이 호킹이 말한 열에너지 방출, 즉 ‘호킹복사’다. 블랙홀도 에너지를 잃는다는 뜻이다.]

이런 사실을 계산을 통해 처음 보인 사람은 스티븐 호킹이다. 호킹은 먼저 완벽히 진공인 우주를 가정했다. 그리고 그 안 어딘가에 있는 단 하나의 별을 가정했다. 이 별의 질량이 충분히 크면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라 곧바로 블랙홀로 응축되고 지평선이 생긴다. 그러면 주변에 더 이상 흡수할 물체가 없어진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더 할 이야기가 없다.
그러나 호킹의 말대로라면 미미하나마 열복사 에너지가 나오고, 에너지와 질량은 결국 같기 때문에 잃어버린 에너지만큼 블랙홀의 질량이 조금씩 줄어든다. 아주 오래 기다리면 이렇게 빠져 나온 총에너지가 블랙홀의 원래 질량에 해당하는 만큼 될 것이다. 이는 블랙홀이 소멸함을 의미한다. 남는 것은 결국 양자역학적으로 빠져 나와 온 우주에 퍼져버린 열 에너지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양자 정보가 빠져있다. 따라서 블랙홀이 되기 직전 별의 처음 양자상태가 어땠는지에 대한 정보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
이는 ‘에너지와 함께 양자정보가 보존돼야 한다’는 양자원리를 위배하고 있다. 호킹은 이를 근거로 양자역학이 타당한 이론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주장은 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을 일으켰지만, 현재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블랙홀의 개념에 뭔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양자적인 수정을 해야 할 뿐, 양자역학 자체를 버려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은하가 존재하는 곳은 골짜기처럼 시공간이 휘어진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서로 다른
파동을 더할 수 있다고 본다. 시공간을 더할 수 있을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

남은 문제 우주 이해는 이제 시작
흔히 초끈이론이 중력의 양자화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시작일 뿐이다. 이제 겨우 양자원리와 중력을 한 건물 안에 집어넣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건물의 무한히 복잡한 평면도를 제대로 본 적은 한번도 없다는 말이다. 근대물리학에서 가장 먼저 이해된 중력이 현대의 물리학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뉴턴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윷놀이는 수천 년 역사를 가진 우리 놀이다. 윷 네 가닥으로 돼지, 개, 양, 소, 말 등을 나타낸다. 주역은 음양론으로 세상만물과 그 이치를 설명한다. 스무고개는 ‘예/아니오’로 사물을 알아맞힌다.
이들 모두 디지털 정보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0과 1의 ‘비트(bit)’를 사용했다. 비트는 ‘바이너리 디지트(binary digit)’ 즉 이진수라는 뜻이다. 윷의 편편한 면, 음양론의 음이나 주역과 태극기의 음효(--), 스무고개의 ‘아니오’를 0, 윷의 둥근 면, 음양론의 양이나 양효(―), 스무고개의 ‘예’를 1로 볼 수 있다.
우리말에도 비트는 있다. ‘이다/아니다’와 ‘예/아니오’가 대표적인 예다. 신경세포로 전달되는 생체신호도 세포막 안팎의 전위차가 +와 -로 표시되는 비트 정보다. 19세기 모스 전신부호나 20세기 전자식 통신 또는 정보처리 장치에 쓰이는 온/오프 스위치 방식 역시 비트다.

1959년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바닥에는 아직도 더 넣을 여지가 많이 있다’라는 강연을 했다. 이 강연은 나노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수 cm 크기의 진공관 스위치는 수 nm(나노미터, 10억 분의 1m) 크기의 트랜지스터로 대체되면서 메가바이트(MB), 기가바이트(GB), 테라바이트(TB)의 시대로 발전해 왔다.
그런데 이런 소형화 또는 반도체 소자의 집적화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스위치가 원자 크기에 가까워지면 미시세계에서 통하던 여러 가지 양자역학적 효과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0과 1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아 정보가 불분명해지는 상황이 왔다.


새로운 컴퓨터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문제로 ‘큰 수의 소인수분해’가 있다. 디지털컴퓨터로는 이 문제를 풀 때 숫자가 커질수록 계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자릿수에 따라 계산시간이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암호통신을 하는 데에 이용된다. 아무리 성능 좋은 컴퓨터를 동원하더라도 소인수분해로 만든 암호를 쉽게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요즘 많이 쓰는 ‘공개키 암호방식’이다. 보내는 사람은 공개된 문제를 이용해 자신의 메시지를 암호문으로 만들어 보내고, 받는 사람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답으로 암호문을 메시지로 복원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어려운 문제는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공개된 자물쇠다. 물건을 꺼내려면 열쇠를 만들어야 되는데, 자물쇠 설계도가 있어도 열쇠를 만드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현재 디지털컴퓨터로는 문을 열 수 없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에 벨연구소의 응용수학자 피터 쇼어가 양자컴퓨터로 소인수분해를 쉽게할 수 있는 양자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만약 이런 알고리즘을 수행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가 실제로 만들어진다면 소인수분해 방식의 공개키 암호문은 모조리 뚫리게 된다.


남은 문제 병주고 약주는 양자정보학과 암호
양자정보학과 암호통신은 ‘병 주고 약 주는’ 관계에 있다. 양자 컴퓨터가 나오면 현재의 공개키 암호방식은 무너지므로 ‘병 주는’ 관계이고, 양자암호로 도청이 불가능한 암호통신방식을 제공하므로 ‘약 주는’ 관계다.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을 비롯해 세계각국의 정보보안기관들은 암호를 풀기 위해 양자컴퓨터의 개발에, 절대안전한 암호통신을 하기 위해 양자암호의 개발에 주목하고 있다.
디지털 정보에서 양자정보로의 전환은, 실수의 수학에서 복소수의 수학으로 전환하는 것 같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양자역학이 자연의 궁극적 원리인 만큼 궁극적인 정보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지궤도 인공위성의 발명자로 유명한 영국의 아서 클라크 경은 “충분히 발달된 과학기술은 마술과 구별할 수 없다”는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그의 말에 딱 해당하는 기술이 바로 양자컴퓨터다.
양자컴퓨터에서는 정보의 기본 단위를 ‘큐비트’라고 부른다. 이는 기존 컴퓨터의 기본단위인 ‘비트’에 대응한 말이다. 만약 32큐비트의 연산능력을 가진 양자컴퓨터가 존재한다면 약 40억 개의 서로 다른 연산을 동시에 할 수가 있다.
하나의 연산에 1초가 걸린다면, 디지털 컴퓨터가 40억 개의 연산을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40억 초, 약 100년이다. 그러나 32큐비트의 양자컴퓨터는 같은 연산을 1초에 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가 기존의 컴퓨터와 비교해 경이로운 연산속도를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자컴퓨터는 양자역학을 정보의 연산에 직접 이용한다.
거시적인 세계관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미시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가끔씩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손에 쥐고 있던 500원짜리 동전의 온도를 재본다고 생각해 보자. 누구나 그 온도가 그 사람의 체온과 같다고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온도를 재 봐도 같은 값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데 동전을 구성하고 있는 금속의 전자를 하나 골라(골라 낼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온도를 재 본다면(실제로는 전자의 ‘에너지’를 측정한
다) 그 값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측정할 때마다 여러 값이 나오며, 여러 번 측정을 계속한다면 특정한 값이 나올 확률을 계산할 수 있게 된다. 전자의 온도(에너지)와 같이 특정한 상태값을 양자역학에서 ‘상태벡터’라고 부른다. 전자와 같은 미시적인 존재의 상태벡터는 여러 개의 서로 다른 값을 ‘동시에’ 가지며 각각의 값을 갖게 될 확률로 나타난다. 이 점을 이용해 ‘동시에’ 여러 개의 연산을 하는 것이 양자컴퓨터의 기본원리다.


남은 문제 양자컴퓨터의 미래는 ‘불사의 생명’
미래학자인 레이몬드 쿠르츠웰은 저서 ‘특이점이 온다’ 에서 21세기 중반이 되면 뇌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개인의 기억과 사고의 패턴을 스캔해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뇌도 컴퓨터처럼 백업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지금보다 수백만 배 혹은 수십억 배 빠른 양자 컴퓨터가 실용화된다면 다운로드 받은 개인의 기억과 사고 패턴을 가상현실 속에 그대로 흉내 내는 작업, 즉 ‘전산모사(simulation)’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수학에는 “만약 A와 B를 구별할 수 없다면 이 둘은 동일하다”는 명제가 있다. 만약 다운로드된 기억과 사고의 패턴이 원래의 개인과 동일하다면 원본(개인)과 구별하기가 아주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수학적인 명제에 따라 원본 성격과 복사본 성격(또는 개인)은 동일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의식과 지성이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 다른 형태로 지속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생각도 가능해진다. 아인슈타인의 기억과 의식이 양자컴퓨터를 통해 존재할 수 있다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1961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인간의 달여행을 공개 선언한 지 50년이 지난 2011년 5월, 그의 조카인 패트릭 케네디가 “마음으로의 달여행”이란 새로운 도전을 제창했다. ‘내부 우주’이자 인류의 마지막 미개척지인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산타바바라) 심리학과 교수 마이클 가자니가는 ‘왜 인간인가?’라는 책에서 그 답을 우리의 ‘뇌’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뇌는 1000억 개의 뉴런(신경세포)과 1000조개의 시냅스(신경세포의 연결)로 이뤄진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시스템이다. 또 뇌는 ‘정신의 집’으로서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통로다. 고도의 인지 및 사고기능을 관장하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이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최근 자기공명영상(MRI) 장치 등 뇌의 활동을 수시로 훤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기들이 개발되며 뇌지도, 기억과 학습, 스트레스와 감정 등 다양한 주제가 연구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문제는 '의식’이다. 20세기 말 세계적인 물리학자들이 선정한 10대 미해결 문제이기도 하다. 의식은 인간에게만 있는 현상으로, 현재 경험하고 있는 심리적 활동의 총집합이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현재, 사라지는 기억의 흔적, 쾌락과 같은 신체적 느낌, 감정, 시각 이미지, 자신과 세상에 대한 명확한 믿음 등 다양한 요소들이 의식을 구성한다.
사실 의식은 복잡하며 매우 수수께끼 같고 변화 무쌍한 성질이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 과학자들이 다른 사람이나 동물 등 ‘다른 의식적 주체’에 대해 객관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의식 연구가 과학 연구의 대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의식이 지배하는 마음과 물리 현상(체내 전기 화학적 상호작용) 사이의 관계를 파헤쳐 ‘의식의 신경과학적 근거(NCC)’를 확립하고자 한 것이다.

남은 문제 또다른 혁명을 꿈꾸며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의식의 바탕이 양자역학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명 현상에서 양자역학이 어떻게 이용되는가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신경과학과 인지 심리학, 이론적 예측체계의 발전, 그리고 철학과의 융합을 통해 생명과 의식을 보다 합리적으로 이해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양자 의식은 미완성 혁명에 그쳤지만, 양자역학과 의식간의 상호작용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사고 실험 영역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전망이다.
물리학적으로 ‘이동’의 정의는 단순하다. 어떤 경로를 ‘연속적으로’ 거쳐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동 과정 자체는 쉽지 않다. 반드시 대가(에너지)를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기묘한 세계로 가면 이동의 중간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이를 ‘공간이동(teleportation)’이라고 한다.
‘스타트렉’ 등 영화에서 우주선이나 사람이 순식간에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놀랍게도 공간이동은 실제 과학이론을 통해 예측됐고, 실험에도 성공했다.
공간이동은 1993년 IBM의 과학자 찰스 베넷이 이론적 기초를 세웠고, 4년 뒤인 1997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의 안톤 자일링거와 이탈리아 로마대의 프란시스코 데 마르티니가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이들이 사용한 방법은 원본과 완전히 동일한 물체를 먼 곳에서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엄밀히 말하면 ‘복사’에 가깝다. 하지만 양자(이들은 일상적인 물체가 아니라 광자를 이용했다)는 정보만 같으면 완전히 동일하다는 명제가 있기에 사실상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일상적인 물체 역시 양자(입자)로 이뤄져 있으므로, 양자공간이동은 물체 또는 사람을 공간이동시키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어렵지만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서울에 사는 동규가 광자 A를 미국 LA에 사는 제시카에게 공간이동으로 전송하려 한다. 앞서 말한 대로라면 제시카에게 똑같은 정보를 지닌 광자를 만들어 주면 공간이동이 완료된다. 이 글에서는 단순화시켜 광자의 ‘스핀’이라는 정보만 전송한다고 하자.
남은 문제 우리 몸도 공간이동시킬 수 있나
1997년 인스부르크대 연구팀이 처음 실험에 성공한 이후 다른 연구팀들이 2004년에는 600m, 2010년 5월에는 16km까지 거리를 늘린 실험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스타트렉’처럼 거시세계에서도 공간이동이 가능할지가 궁금해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은 먼 얘기다. 자동차만 해도 10억×10억×10억 개가 넘는 입자들로 이뤄져 있다. 1027개에 달하는 입자들을 이런 식으로 일일이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과학은 수많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면서 진보해 왔다. 택배업체들이 공간이동업체로 업종전환하는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 믿는다.
양자와 중력은 20세기 초 물리학의 혁명을 이끈 두 단어다. 19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빛이 가진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으며, 최소 단위가 있다는 실험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맥스웰이 전기력과 자기력을 통합하면서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두 가지 발견은 모두 당시까지의 세계관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이 문제는 각각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발견으로 단숨에 해결됐다. 20세기 현대과학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양자역학은 초기에 수학적으로는 불완전한 형태로 시작했다. 하지만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발전을 거듭했고, 이를 통해 힘과 물질에 대한 궁극적인 이해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또 자연계의 모든 원소와 이들의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가능해지면서 반도체, 초전도체, 레이저, MRI 등 여러 분야에 응용됐다. 현대 화학과 분자생물학 등 새로운 연구 분야도 가능해졌다.
초미시세계의 궁극적인 단위 물질, 즉 쿼크와 이보다도 작은 초끈에 대한 탐구도 이어지고 있다. 양자역학과 반대로 상대론적 중력이론, 즉상대성이론은 처음부터 수학적으로 완벽해 보였다.
우주의 팽창과 대폭발(빅뱅) 우주론, 우주배경복사, 블랙홀의 존재 등을 알려주며 성공적인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지금 이론가들의 눈에는 새로 풀어야 하는 난제 중의 난제로 남아 있다. 왜일까?
양자론은 모든 것이 파동 이라고 말한다. 파동의 가장 중요한 성질은 연결돼 있는 모든 곳으로 퍼져 간다는 것이다. 연못에 돌을 던져 큰 물결을 일으키면 연못의 모양이 아무리 구불거려도 구석구석까지 물결이 도달한다. 파동의 다른 중요한 성질은 ‘파동이 있는 위치는 대략적으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물결의 높고 낮은 곳, 빠르고 느린 곳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물결이 ‘정확히 어디에 있고 어디를 거쳐서 어디로 간다’고 말할 수 없다. 즉 파동은 특정한 궤적을 그리며 움직일 수 없다.
또 물결과 물결은 쉽게 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물결과 물결 파동의 진행이 서로 상쇄되거나 합쳐지면서 마치 궤적처럼 보이는 형상을 만들기도 한다. 지진해일(쓰나미)이 그 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황에 따라 생기는 비슷한 모습의 결과지 근원적인 현상은 아니다.
전자, 양성자, 중성자, 광자 역시 이러한 형태로 움직인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중력이론에서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입자와 입자, 천체와 입자, 천체와 천체 사이의 거리와 힘, 그리고 이들이 지나는 궤적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이는 ‘파동은 궤적을 그릴 수 없다’는 원칙과 부딪힌다. 하지만 이는 중력 이론이 잘못됐다기보다는 ‘거시적인 물체에서는 왜 궤적이 가능해지는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양자적인 물체(입자)들이 많이 모여 거시적인 물체를 이룬 경우 양자역학이 어떤 현상을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은하수에 블랙홀이 만들어졌다고 가정한 시뮬레이션 사진.]
[블랙홀에서 에너지가 나온다-끊임없이 입자와 반입자가 쌍으로 태어났다 다시 합쳐져 소멸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만약 입자와 반입자
중 하나가 사건의 지평선에 들어가면 남은 입자 또는 반입자는 소멸하지 않고 방출된다. 이것이 호킹이 말한 열에너지 방출, 즉 ‘호킹복사’다. 블랙홀도 에너지를 잃는다는 뜻이다.]
이런 사실을 계산을 통해 처음 보인 사람은 스티븐 호킹이다. 호킹은 먼저 완벽히 진공인 우주를 가정했다. 그리고 그 안 어딘가에 있는 단 하나의 별을 가정했다. 이 별의 질량이 충분히 크면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라 곧바로 블랙홀로 응축되고 지평선이 생긴다. 그러면 주변에 더 이상 흡수할 물체가 없어진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더 할 이야기가 없다.
그러나 호킹의 말대로라면 미미하나마 열복사 에너지가 나오고, 에너지와 질량은 결국 같기 때문에 잃어버린 에너지만큼 블랙홀의 질량이 조금씩 줄어든다. 아주 오래 기다리면 이렇게 빠져 나온 총에너지가 블랙홀의 원래 질량에 해당하는 만큼 될 것이다. 이는 블랙홀이 소멸함을 의미한다. 남는 것은 결국 양자역학적으로 빠져 나와 온 우주에 퍼져버린 열 에너지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양자 정보가 빠져있다. 따라서 블랙홀이 되기 직전 별의 처음 양자상태가 어땠는지에 대한 정보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
이는 ‘에너지와 함께 양자정보가 보존돼야 한다’는 양자원리를 위배하고 있다. 호킹은 이를 근거로 양자역학이 타당한 이론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주장은 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을 일으켰지만, 현재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블랙홀의 개념에 뭔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양자적인 수정을 해야 할 뿐, 양자역학 자체를 버려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남은 문제 우주 이해는 이제 시작
흔히 초끈이론이 중력의 양자화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시작일 뿐이다. 이제 겨우 양자원리와 중력을 한 건물 안에 집어넣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건물의 무한히 복잡한 평면도를 제대로 본 적은 한번도 없다는 말이다. 근대물리학에서 가장 먼저 이해된 중력이 현대의 물리학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뉴턴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윷놀이는 수천 년 역사를 가진 우리 놀이다. 윷 네 가닥으로 돼지, 개, 양, 소, 말 등을 나타낸다. 주역은 음양론으로 세상만물과 그 이치를 설명한다. 스무고개는 ‘예/아니오’로 사물을 알아맞힌다.
이들 모두 디지털 정보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0과 1의 ‘비트(bit)’를 사용했다. 비트는 ‘바이너리 디지트(binary digit)’ 즉 이진수라는 뜻이다. 윷의 편편한 면, 음양론의 음이나 주역과 태극기의 음효(--), 스무고개의 ‘아니오’를 0, 윷의 둥근 면, 음양론의 양이나 양효(―), 스무고개의 ‘예’를 1로 볼 수 있다.
우리말에도 비트는 있다. ‘이다/아니다’와 ‘예/아니오’가 대표적인 예다. 신경세포로 전달되는 생체신호도 세포막 안팎의 전위차가 +와 -로 표시되는 비트 정보다. 19세기 모스 전신부호나 20세기 전자식 통신 또는 정보처리 장치에 쓰이는 온/오프 스위치 방식 역시 비트다.
1959년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바닥에는 아직도 더 넣을 여지가 많이 있다’라는 강연을 했다. 이 강연은 나노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수 cm 크기의 진공관 스위치는 수 nm(나노미터, 10억 분의 1m) 크기의 트랜지스터로 대체되면서 메가바이트(MB), 기가바이트(GB), 테라바이트(TB)의 시대로 발전해 왔다.
그런데 이런 소형화 또는 반도체 소자의 집적화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스위치가 원자 크기에 가까워지면 미시세계에서 통하던 여러 가지 양자역학적 효과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0과 1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아 정보가 불분명해지는 상황이 왔다.
새로운 컴퓨터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문제로 ‘큰 수의 소인수분해’가 있다. 디지털컴퓨터로는 이 문제를 풀 때 숫자가 커질수록 계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자릿수에 따라 계산시간이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암호통신을 하는 데에 이용된다. 아무리 성능 좋은 컴퓨터를 동원하더라도 소인수분해로 만든 암호를 쉽게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요즘 많이 쓰는 ‘공개키 암호방식’이다. 보내는 사람은 공개된 문제를 이용해 자신의 메시지를 암호문으로 만들어 보내고, 받는 사람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답으로 암호문을 메시지로 복원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어려운 문제는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공개된 자물쇠다. 물건을 꺼내려면 열쇠를 만들어야 되는데, 자물쇠 설계도가 있어도 열쇠를 만드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현재 디지털컴퓨터로는 문을 열 수 없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에 벨연구소의 응용수학자 피터 쇼어가 양자컴퓨터로 소인수분해를 쉽게할 수 있는 양자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만약 이런 알고리즘을 수행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가 실제로 만들어진다면 소인수분해 방식의 공개키 암호문은 모조리 뚫리게 된다.
남은 문제 병주고 약주는 양자정보학과 암호
양자정보학과 암호통신은 ‘병 주고 약 주는’ 관계에 있다. 양자 컴퓨터가 나오면 현재의 공개키 암호방식은 무너지므로 ‘병 주는’ 관계이고, 양자암호로 도청이 불가능한 암호통신방식을 제공하므로 ‘약 주는’ 관계다.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을 비롯해 세계각국의 정보보안기관들은 암호를 풀기 위해 양자컴퓨터의 개발에, 절대안전한 암호통신을 하기 위해 양자암호의 개발에 주목하고 있다.
디지털 정보에서 양자정보로의 전환은, 실수의 수학에서 복소수의 수학으로 전환하는 것 같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양자역학이 자연의 궁극적 원리인 만큼 궁극적인 정보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지궤도 인공위성의 발명자로 유명한 영국의 아서 클라크 경은 “충분히 발달된 과학기술은 마술과 구별할 수 없다”는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그의 말에 딱 해당하는 기술이 바로 양자컴퓨터다.
양자컴퓨터에서는 정보의 기본 단위를 ‘큐비트’라고 부른다. 이는 기존 컴퓨터의 기본단위인 ‘비트’에 대응한 말이다. 만약 32큐비트의 연산능력을 가진 양자컴퓨터가 존재한다면 약 40억 개의 서로 다른 연산을 동시에 할 수가 있다.
하나의 연산에 1초가 걸린다면, 디지털 컴퓨터가 40억 개의 연산을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40억 초, 약 100년이다. 그러나 32큐비트의 양자컴퓨터는 같은 연산을 1초에 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가 기존의 컴퓨터와 비교해 경이로운 연산속도를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자컴퓨터는 양자역학을 정보의 연산에 직접 이용한다.
거시적인 세계관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미시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가끔씩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손에 쥐고 있던 500원짜리 동전의 온도를 재본다고 생각해 보자. 누구나 그 온도가 그 사람의 체온과 같다고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온도를 재 봐도 같은 값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데 동전을 구성하고 있는 금속의 전자를 하나 골라(골라 낼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온도를 재 본다면(실제로는 전자의 ‘에너지’를 측정한
다) 그 값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측정할 때마다 여러 값이 나오며, 여러 번 측정을 계속한다면 특정한 값이 나올 확률을 계산할 수 있게 된다. 전자의 온도(에너지)와 같이 특정한 상태값을 양자역학에서 ‘상태벡터’라고 부른다. 전자와 같은 미시적인 존재의 상태벡터는 여러 개의 서로 다른 값을 ‘동시에’ 가지며 각각의 값을 갖게 될 확률로 나타난다. 이 점을 이용해 ‘동시에’ 여러 개의 연산을 하는 것이 양자컴퓨터의 기본원리다.
남은 문제 양자컴퓨터의 미래는 ‘불사의 생명’
미래학자인 레이몬드 쿠르츠웰은 저서 ‘특이점이 온다’ 에서 21세기 중반이 되면 뇌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개인의 기억과 사고의 패턴을 스캔해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뇌도 컴퓨터처럼 백업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지금보다 수백만 배 혹은 수십억 배 빠른 양자 컴퓨터가 실용화된다면 다운로드 받은 개인의 기억과 사고 패턴을 가상현실 속에 그대로 흉내 내는 작업, 즉 ‘전산모사(simulation)’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수학에는 “만약 A와 B를 구별할 수 없다면 이 둘은 동일하다”는 명제가 있다. 만약 다운로드된 기억과 사고의 패턴이 원래의 개인과 동일하다면 원본(개인)과 구별하기가 아주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수학적인 명제에 따라 원본 성격과 복사본 성격(또는 개인)은 동일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의식과 지성이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 다른 형태로 지속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생각도 가능해진다. 아인슈타인의 기억과 의식이 양자컴퓨터를 통해 존재할 수 있다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1961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인간의 달여행을 공개 선언한 지 50년이 지난 2011년 5월, 그의 조카인 패트릭 케네디가 “마음으로의 달여행”이란 새로운 도전을 제창했다. ‘내부 우주’이자 인류의 마지막 미개척지인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산타바바라) 심리학과 교수 마이클 가자니가는 ‘왜 인간인가?’라는 책에서 그 답을 우리의 ‘뇌’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뇌는 1000억 개의 뉴런(신경세포)과 1000조개의 시냅스(신경세포의 연결)로 이뤄진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시스템이다. 또 뇌는 ‘정신의 집’으로서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통로다. 고도의 인지 및 사고기능을 관장하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이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최근 자기공명영상(MRI) 장치 등 뇌의 활동을 수시로 훤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기들이 개발되며 뇌지도, 기억과 학습, 스트레스와 감정 등 다양한 주제가 연구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문제는 '의식’이다. 20세기 말 세계적인 물리학자들이 선정한 10대 미해결 문제이기도 하다. 의식은 인간에게만 있는 현상으로, 현재 경험하고 있는 심리적 활동의 총집합이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현재, 사라지는 기억의 흔적, 쾌락과 같은 신체적 느낌, 감정, 시각 이미지, 자신과 세상에 대한 명확한 믿음 등 다양한 요소들이 의식을 구성한다.
사실 의식은 복잡하며 매우 수수께끼 같고 변화 무쌍한 성질이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 과학자들이 다른 사람이나 동물 등 ‘다른 의식적 주체’에 대해 객관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의식 연구가 과학 연구의 대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의식이 지배하는 마음과 물리 현상(체내 전기 화학적 상호작용) 사이의 관계를 파헤쳐 ‘의식의 신경과학적 근거(NCC)’를 확립하고자 한 것이다.
남은 문제 또다른 혁명을 꿈꾸며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의식의 바탕이 양자역학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명 현상에서 양자역학이 어떻게 이용되는가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신경과학과 인지 심리학, 이론적 예측체계의 발전, 그리고 철학과의 융합을 통해 생명과 의식을 보다 합리적으로 이해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양자 의식은 미완성 혁명에 그쳤지만, 양자역학과 의식간의 상호작용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사고 실험 영역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전망이다.
글 : 박병철 교수·과학번역가, 이필진 교수, 김재완 교수, 안도열 교수, 김승환 교수
이미지출처 : 악셀 멜링거-우테 크라우스, istockphoto, REX, 김재완, 찰스 베넷, 노스웨스턴대, 사이먼싱 ‘코드북’, 토미 무어먼
이랬다 저랬다 미스터리 양자월드
양자론은 20세기의 최고 영약이다. 19세기 후반부터 과학자들을 골치 아프게 했던 방사성 현상, 반물질, 빛과
소립자들의 특성 등 다양한
현상을 속 시원하게 풀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론은 현대물리학의 또 다른 줄기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비해 인기가 없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원자세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게다가 들어도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조차 “아무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장담한다”고 했을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본격적인 양자미션을 탐험하기 전에 양자월드를 살짝 들여다보자. 양자의 기묘한 성질을 작은 임무로 재구성했다.

만약 우리가 양자라면? 이 공상은 현실이 될 수 있다. 양자월드에서는 하나의 입자가 동시에 여러 장소에 있을 수 있다. 이런 기묘한 양자현상을 ‘중첩’이라고 한다. 중첩은 단지 장소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속도, 운동량, 심지어 ‘생과 사’와 같은 물리학적 ‘상태’에서도 쓸 수 있다. 이때 중첩은 어떤 사물이 두 가지 이상의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시 생과 사를 얘기하는 극단적인 중첩 현상의 예다. 상자 속에 고양이와 방사성원소가 들어 있다. 그 안에 그 방사성원소가 붕괴하면 극약이 들어 있는 병이 깨지는 장치가 있다고 하자. 만약 원자가 중첩상태에 있다면, 원자는 붕괴하지 않거나 붕괴하거나 하는 어정쩡한 상태에 있게 된다. 이럴 경우 고양이는 어떻게 될까. 고양이 역시 동시에 살아있으면서 죽어있는 말도 안 되는 상태가 되는 걸까.
양자의 중첩상태는 이미 원자나 전자, 그리고 빛에서처럼 미시세계에서는 실험적으로 확인된 지 오래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양자세계와 고전물리학 세계를 구분하는 데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이용했다. 중첩현상이 나타나면 양자세계이고 나타나지 않으면 고전물리학의 세계다. 그런데 최근 두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거시세계에서도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거나 죽어 있는, 기묘한 중첩상태에 있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결국 살아있는 걸까, 죽은 것일까? 이 점이 몹시 궁금해 안달이 난다면 고양이가 들어 있는 상자를 열어보면 된다. 상식이란 게 통하지 않는 양자의 세계이니 혹시 죽지도 않고 살아 있지도 않은 생과 사의 중간쯤인 고양이를 볼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뚜껑을 열어 고양이를 보는 행위, 즉 ‘관측’이나 ‘측정’ 행위가 일어나는 순간, 양자의 기묘한 중첩상태는 오묘하게도 깨져버린다. 즉 고양이는 살았거나 죽어 있는 어느 한 상태만을 띠게 되는 것이다.
양자세계에서는 측정이란 행위가 상황과는 상관없는 단순한 ‘봄’이 아니라 중첩상태를 깨뜨려버리는 매우 영향력이 있는 행위다. 이런 까닭에 과학자들이 양자의 중첩상태를 직접 측정하는 대신 간접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자가 두 개의 문을 동시에 통과하는지(중첩이 됐는지)를 두 문을 통과한 뒤에 나타난 모습을 통해 확인하는 식이다.
그런데 더 기묘한 것은 양자세계에서 관측 행위가 단순히 중첩현상을 깨뜨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살아있다고 관측됐다면 이는 방사성 원자가 붕괴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면 고양이를 상자에 넣은 순간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된다. 즉 상자 속의 방사성 원자는 이때부터 붕괴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는 중첩상태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관측 행위는 리셋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
만약 방사성 원자가 붕괴하기도 전에 계속해서 리셋버튼을 눌러준다면? 다시 말해 측정을 자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원자는 영원히 붕괴하지 않을까.


전기를 띠지 않은 금속판 두 장을 서로 마주보도록 아주 가까이 세워보자. 이때 주변은 어떤 전자기력도 작용하지 않고 텅 비어 있는 진공의 공간이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 금속판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생겨나 가까이 움직인다.
이 힘은 어디에서 생겨난 걸까. 만유인력은 아니다.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이다. 판의 모양 등 다른 요인이 있긴 하지만 대략 두 판 사이 거리의 4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 생긴다. 예를 들어 두 금속판이 일반적인 원자 크기의 100배에 해당하는 10nm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면, 여기에는 1기압에 해당하는 힘이 작용한다.
이 유령 같은 힘은 ‘카시미르 힘’이라고 한다. 1948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헨드릭 카시미르가 처음으로 예측했고, 약 50년 뒤에 관측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두 금속판에 어떤 전자기력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고전물리학의 관점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카시미르의 힘은 양자역학에서 가장 유명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관련이 있다. 양자세계에서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뭔가를 제대로 알고자 할수록 다른 점들에 대해서는 더 잘 모르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입자의 위치를 제대로 보려고 하면 그 입자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지, 그 입자의 운동량에 대해서 점점 흐릿한 정보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불확정성 원리는 에너지와 시간 사이에도 적용된다. 어떤 공간이 완전히 텅 빈 무의 공간이라고 가정해보자. 여기에는 시간도 관여한다. 그 공간이 정확하게 에너지가 0인 순간이 존재해야 무의 공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공간은 에너지와 시간 둘을 동시에 정확하게 알아낼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에 위배된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완전한 무는 존재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이 “도깨비 같은 원격 작용(spooky action at a distance)”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양자역학의 성질, 바로 ‘얽힘(entanglement)’에 대한 설명이다. 얽힘 현상은 순간이동과 비슷하다. 아인슈타인은 얽힘 현상이 양자론이 엉터리 이론이라는 증거라고 혹평하기까지 했다.
반면 얽힘이 양자론을 정의하는 특징이라고 두둔한 사람도 있다. 바로 슈뢰딩거다. 1930년대에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는 얽힘 현상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하지만 당시 슈뢰딩거도 얽힘이란 기묘한 개념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진 않았다고 한다. 어떤 것도 빛보다 빨리 전달될 수 없다는 상대성이론의 전제에 위배되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 제3의 인물이 등장하면서 아인슈타인의 주장은 위기에 빠졌다. 1964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물리학자 존 벨이 얽힘 현상을 통해 양자론의 불완전성을 주장한 아인슈타인의 생각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식을 발표했다. 이를 ‘벨의 부등식’이라고 하는데, 이 식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양자역학이 옳다.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 부등식을 만족시키는 경우는 없었다. 얽힘 현상이 가능한 것이다. 양자 얽힘은 유령 같은 허무맹랑한 현상이 아니다. 2008년에는 스위스 제네바대 니콜라스 지생 교수가 양자 얽힘이 빛보다 최소 1만 배 이상 빠르다는 연구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했다.


양자역학은 1913년 보어의 원자모형에서 1928년 폴 디랙의 상대론적 파동방정식에 이르기까지 원자구조 연구, 즉 원자핵 주변의 전자배치와 상태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원자구조에 따라 고유한 스펙트럼선의 파장과 세기가 결정되기 때문에, 이 시기의 양자역학은 원자의 스펙트럼선에 대한 연구가 주였다. 양자역학은 완성되기 이전부터 여러 분야에 응용되기 시작해 이제는 거의 모든 물리과학 분야의 토대가 됐다. 양자역학을 활용한 역사를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일은 20세기 과학사를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해야 할 정도로 방대하다. 여기에서는 20세기 중반, 양자역학이 어떤 분야에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오늘날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현상을 속 시원하게 풀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론은 현대물리학의 또 다른 줄기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비해 인기가 없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원자세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게다가 들어도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조차 “아무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장담한다”고 했을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본격적인 양자미션을 탐험하기 전에 양자월드를 살짝 들여다보자. 양자의 기묘한 성질을 작은 임무로 재구성했다.
만약 우리가 양자라면? 이 공상은 현실이 될 수 있다. 양자월드에서는 하나의 입자가 동시에 여러 장소에 있을 수 있다. 이런 기묘한 양자현상을 ‘중첩’이라고 한다. 중첩은 단지 장소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속도, 운동량, 심지어 ‘생과 사’와 같은 물리학적 ‘상태’에서도 쓸 수 있다. 이때 중첩은 어떤 사물이 두 가지 이상의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시 생과 사를 얘기하는 극단적인 중첩 현상의 예다. 상자 속에 고양이와 방사성원소가 들어 있다. 그 안에 그 방사성원소가 붕괴하면 극약이 들어 있는 병이 깨지는 장치가 있다고 하자. 만약 원자가 중첩상태에 있다면, 원자는 붕괴하지 않거나 붕괴하거나 하는 어정쩡한 상태에 있게 된다. 이럴 경우 고양이는 어떻게 될까. 고양이 역시 동시에 살아있으면서 죽어있는 말도 안 되는 상태가 되는 걸까.
양자의 중첩상태는 이미 원자나 전자, 그리고 빛에서처럼 미시세계에서는 실험적으로 확인된 지 오래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양자세계와 고전물리학 세계를 구분하는 데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이용했다. 중첩현상이 나타나면 양자세계이고 나타나지 않으면 고전물리학의 세계다. 그런데 최근 두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거시세계에서도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거나 죽어 있는, 기묘한 중첩상태에 있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결국 살아있는 걸까, 죽은 것일까? 이 점이 몹시 궁금해 안달이 난다면 고양이가 들어 있는 상자를 열어보면 된다. 상식이란 게 통하지 않는 양자의 세계이니 혹시 죽지도 않고 살아 있지도 않은 생과 사의 중간쯤인 고양이를 볼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뚜껑을 열어 고양이를 보는 행위, 즉 ‘관측’이나 ‘측정’ 행위가 일어나는 순간, 양자의 기묘한 중첩상태는 오묘하게도 깨져버린다. 즉 고양이는 살았거나 죽어 있는 어느 한 상태만을 띠게 되는 것이다.
양자세계에서는 측정이란 행위가 상황과는 상관없는 단순한 ‘봄’이 아니라 중첩상태를 깨뜨려버리는 매우 영향력이 있는 행위다. 이런 까닭에 과학자들이 양자의 중첩상태를 직접 측정하는 대신 간접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자가 두 개의 문을 동시에 통과하는지(중첩이 됐는지)를 두 문을 통과한 뒤에 나타난 모습을 통해 확인하는 식이다.
그런데 더 기묘한 것은 양자세계에서 관측 행위가 단순히 중첩현상을 깨뜨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살아있다고 관측됐다면 이는 방사성 원자가 붕괴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면 고양이를 상자에 넣은 순간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된다. 즉 상자 속의 방사성 원자는 이때부터 붕괴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는 중첩상태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관측 행위는 리셋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
만약 방사성 원자가 붕괴하기도 전에 계속해서 리셋버튼을 눌러준다면? 다시 말해 측정을 자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원자는 영원히 붕괴하지 않을까.
전기를 띠지 않은 금속판 두 장을 서로 마주보도록 아주 가까이 세워보자. 이때 주변은 어떤 전자기력도 작용하지 않고 텅 비어 있는 진공의 공간이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 금속판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생겨나 가까이 움직인다.
이 힘은 어디에서 생겨난 걸까. 만유인력은 아니다.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이다. 판의 모양 등 다른 요인이 있긴 하지만 대략 두 판 사이 거리의 4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 생긴다. 예를 들어 두 금속판이 일반적인 원자 크기의 100배에 해당하는 10nm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면, 여기에는 1기압에 해당하는 힘이 작용한다.
이 유령 같은 힘은 ‘카시미르 힘’이라고 한다. 1948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헨드릭 카시미르가 처음으로 예측했고, 약 50년 뒤에 관측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두 금속판에 어떤 전자기력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고전물리학의 관점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카시미르의 힘은 양자역학에서 가장 유명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관련이 있다. 양자세계에서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뭔가를 제대로 알고자 할수록 다른 점들에 대해서는 더 잘 모르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입자의 위치를 제대로 보려고 하면 그 입자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지, 그 입자의 운동량에 대해서 점점 흐릿한 정보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불확정성 원리는 에너지와 시간 사이에도 적용된다. 어떤 공간이 완전히 텅 빈 무의 공간이라고 가정해보자. 여기에는 시간도 관여한다. 그 공간이 정확하게 에너지가 0인 순간이 존재해야 무의 공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공간은 에너지와 시간 둘을 동시에 정확하게 알아낼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에 위배된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완전한 무는 존재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이 “도깨비 같은 원격 작용(spooky action at a distance)”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양자역학의 성질, 바로 ‘얽힘(entanglement)’에 대한 설명이다. 얽힘 현상은 순간이동과 비슷하다. 아인슈타인은 얽힘 현상이 양자론이 엉터리 이론이라는 증거라고 혹평하기까지 했다.
반면 얽힘이 양자론을 정의하는 특징이라고 두둔한 사람도 있다. 바로 슈뢰딩거다. 1930년대에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는 얽힘 현상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하지만 당시 슈뢰딩거도 얽힘이란 기묘한 개념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진 않았다고 한다. 어떤 것도 빛보다 빨리 전달될 수 없다는 상대성이론의 전제에 위배되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 제3의 인물이 등장하면서 아인슈타인의 주장은 위기에 빠졌다. 1964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물리학자 존 벨이 얽힘 현상을 통해 양자론의 불완전성을 주장한 아인슈타인의 생각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식을 발표했다. 이를 ‘벨의 부등식’이라고 하는데, 이 식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양자역학이 옳다.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 부등식을 만족시키는 경우는 없었다. 얽힘 현상이 가능한 것이다. 양자 얽힘은 유령 같은 허무맹랑한 현상이 아니다. 2008년에는 스위스 제네바대 니콜라스 지생 교수가 양자 얽힘이 빛보다 최소 1만 배 이상 빠르다는 연구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했다.
양자역학의 응용 역사
양자역학은 “오늘도 발전 중”
양자역학은 “오늘도 발전 중”
양자역학은 1913년 보어의 원자모형에서 1928년 폴 디랙의 상대론적 파동방정식에 이르기까지 원자구조 연구, 즉 원자핵 주변의 전자배치와 상태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원자구조에 따라 고유한 스펙트럼선의 파장과 세기가 결정되기 때문에, 이 시기의 양자역학은 원자의 스펙트럼선에 대한 연구가 주였다. 양자역학은 완성되기 이전부터 여러 분야에 응용되기 시작해 이제는 거의 모든 물리과학 분야의 토대가 됐다. 양자역학을 활용한 역사를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일은 20세기 과학사를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해야 할 정도로 방대하다. 여기에서는 20세기 중반, 양자역학이 어떤 분야에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오늘날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글 : 박미용 객원 기자, 이관수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
이미지출처 : istockphoto, 위키미디어, 하이닉스, 나사, 미공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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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를 기억하라, 이웅상
창조주를 기억하라
이웅상
한국창조과학회 회장 (3대, 5대)
명지대학교 교목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5-28)
창세기 1:1절의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창세기 1:25-28절은 모든 동물들을 하나님이 종류대로 창조하셨으며, 인간은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현대과학자들은 모든 생물들은 우연히 지구상에 출현한 원시생명체로부터 진화된 산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인간도 원숭이와 같은 동물에서 진화되었으며, 그 증거로 인간과 원숭이는 여러 가지가 닮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상충된 주장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이 창조주간을 맞이하여 창세기의 본문 말씀 안에서 회복해야할 3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I. 창조신앙의 회복
창조신앙을 회복해야할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진화론의 영향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이 하나의 과학으로서 신앙에는 별 관계가 없는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화론은 현대과학 문명사회에서 복음사역에 가장 큰 장애물 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내세도 없고 인간이 영적인 존재도 아닌 동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무기물에서 우연한 충돌에 의해 유기물이 생겨나고 여기서 최초의 생명체가 우연히 탄생했다고 믿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이 최초의 한 생명체에서 진화되어 나온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인간은 그 기원에 있어서 다른 동물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으며, 궁극적으로 무생물에서부터 생겨난 우연의 산물입니다. 이런 인간 속에 무슨 도덕과 영원한 세계가 있겠습니까? 우연히 무기물에서 왔다 무기물로 돌아가면 그만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진화론적 교육을 강요당한 지성인들에게 창조자 하나님은 하나의 우스운 신화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되며, 성경은 신화나 설화로 가득 찬 책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하고 말게 됩니다. 이러한 철저한 유물론적 세계관에는 하나님도 그리스도의 복음도 별 의미 없게 되고 맙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진화론은 이미 신앙을 소유한 기독인에게도 신앙성장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신앙이 시작된 후에도 이 문제가 분명히 해결되지 않으면 늘 방황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70%의 기독대학생들이 성경은 과학적으로 오류가 많은 책으로 믿고 있으며, 이들 중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시절에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청소년 때부터 신앙과 함께 진화론의 비과학성과 창조론의 과학성을 가르침으로 성경은 현대과학과 모순 된다는 잘못된 학교 교육을 교정해 주어야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진화론이 과학적으로도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은 지질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증거가 없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과거의 생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화석들이 진화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중생대의 대표적인 표준화석인 암모나이트와 비슷한 앵무조개는 화석과 조금도 변하지 않고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투구게는 5억 년 전에 존재했다고 추정되고 있는데, 오늘날의 모습과 역시 똑같습니다. 최근에는 고생대 화석으로 알려져 왔던 실러캔스라는 물고기가 최근에 살아있는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존재했던 이런 생물들이 현재까지 변하지 않고 살아있다면, 과연 진화했다는 주장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현대생물학은 모든 생물이 설계도와 같은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비행기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저절로 만들어질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비행기 엔진은 굉장히 복잡해서 수 백 만개의 부품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비행기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며, 누군가가 설계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설계했다면 분명히 비행기는 복잡한 구조를 알려주는 설계도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설계도란 집을 지을 때 기초는 어떻게 놓으며, 기둥은 어떤 재료로 어떤 모양으로 만들 것이며, 벽은 어떻게 하고, 지붕은 어떻게 만들 것이며, 창문은 어디에 만드는 등의 세부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몸도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오히려 비행기보다도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생물학은 DNA가 바로 생물의 설계도임을 밝혔습니다.
DNA는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의 핵 속에 들어 있는 물질로서 이중나선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4 종류의 염기로 되어 있습니다. 즉,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시토신(C)으로 구성되어 있는 염기들이 A와 T, G와 C가 각각 쌍을 이루어서 이중나선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DNA가 히스톤이란 단백질에 감기고 꼬여 핵 속에 저장되어 있는 형태를 염색체라고 합니다. 이 네 종류의 염기가 어떤 순서로 암호화 되어있는 가에 따라서 정보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즉 모든 생명체에 필요한 정보는 이 DNA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곧 우리 몸의 설계도와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누가 대체 생명체의 설계도를 제작했는가? 라는 질문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비행기의 설계도를 사람이 만든 것처럼, 생명체의 설계도가 존재하려면 창조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II.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1:26)라는 말씀은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특수한 존재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첫째로, 인간이 하나님과 같은 영적인 존재라는 뜻입니다. 인간만이 영성을 가진 존재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진화론이 인간은 동물로부터 진화된 동물중의 하나라고 가르쳐도, 온 세계를 살펴보면, 인종마다 풍습과 문화와 언어는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인간이 종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물의 세계에는 종교행위가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절대자를 찾고 부르고 예배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다고 하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닮았다는 말은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은 영적인 존재라는 뜻 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도록 창조되었고, 그렇게 살아갈 때만이 참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인간은 윤리적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도덕성은 하나님의 형상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인간으로 인간되게 하는 중요한 요소는 도덕성입니다. 인간이 인간되기 위해서는 의와 진실과 거룩함과 같은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도덕적 형상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의로는 자신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직 인간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함을 이루고 도덕적 형상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닮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벧전 1:15-16)“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10)”
창조주간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합시다. 이를 위해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고 기도를 회복하셔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영성과 거룩함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III. 청지기적 사명의 회복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 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 1:28).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피조물을 관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청지기로서, 관리자로서, 창조물을 돌보는 역할을 인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에서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정복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세상의 청지기로서가 아니라 정복자로서 자연을 자신 만을 위해 착취해왔습니다. 그 결과 많은 환경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자연의 3대요소인 공기, 물, 토양이 모두 오염되어 가고 있습니다. 결국 엘리뇨 같은 이상기후 현상, 오존층의 파괴 등등 모든 심각한 자연현상이 지구의 종말을 예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자연에 대한 청지기적 신앙을 가지고 자연에 하나님의 은총을 전달하는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환경보호는 작은 일부터 실천해야합니다. 분해되지 않는 쓰레기를 줄이고 또 잘 분리하여 처리하십시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질은 최대한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삶을 생활화 합시다. 이것은 청지기로서 모든 인간에게 명하신 창조자의 문화명령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합니다.
출처 : 창조 제146호, 2006년 7-9월호
이웅상
한국창조과학회 회장 (3대, 5대)
명지대학교 교목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5-28)
창세기 1:1절의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창세기 1:25-28절은 모든 동물들을 하나님이 종류대로 창조하셨으며, 인간은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현대과학자들은 모든 생물들은 우연히 지구상에 출현한 원시생명체로부터 진화된 산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인간도 원숭이와 같은 동물에서 진화되었으며, 그 증거로 인간과 원숭이는 여러 가지가 닮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상충된 주장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이 창조주간을 맞이하여 창세기의 본문 말씀 안에서 회복해야할 3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I. 창조신앙의 회복
창조신앙을 회복해야할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진화론의 영향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이 하나의 과학으로서 신앙에는 별 관계가 없는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화론은 현대과학 문명사회에서 복음사역에 가장 큰 장애물 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내세도 없고 인간이 영적인 존재도 아닌 동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무기물에서 우연한 충돌에 의해 유기물이 생겨나고 여기서 최초의 생명체가 우연히 탄생했다고 믿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이 최초의 한 생명체에서 진화되어 나온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인간은 그 기원에 있어서 다른 동물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으며, 궁극적으로 무생물에서부터 생겨난 우연의 산물입니다. 이런 인간 속에 무슨 도덕과 영원한 세계가 있겠습니까? 우연히 무기물에서 왔다 무기물로 돌아가면 그만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진화론적 교육을 강요당한 지성인들에게 창조자 하나님은 하나의 우스운 신화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되며, 성경은 신화나 설화로 가득 찬 책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하고 말게 됩니다. 이러한 철저한 유물론적 세계관에는 하나님도 그리스도의 복음도 별 의미 없게 되고 맙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진화론은 이미 신앙을 소유한 기독인에게도 신앙성장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신앙이 시작된 후에도 이 문제가 분명히 해결되지 않으면 늘 방황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70%의 기독대학생들이 성경은 과학적으로 오류가 많은 책으로 믿고 있으며, 이들 중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시절에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청소년 때부터 신앙과 함께 진화론의 비과학성과 창조론의 과학성을 가르침으로 성경은 현대과학과 모순 된다는 잘못된 학교 교육을 교정해 주어야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진화론이 과학적으로도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은 지질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증거가 없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과거의 생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화석들이 진화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중생대의 대표적인 표준화석인 암모나이트와 비슷한 앵무조개는 화석과 조금도 변하지 않고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투구게는 5억 년 전에 존재했다고 추정되고 있는데, 오늘날의 모습과 역시 똑같습니다. 최근에는 고생대 화석으로 알려져 왔던 실러캔스라는 물고기가 최근에 살아있는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존재했던 이런 생물들이 현재까지 변하지 않고 살아있다면, 과연 진화했다는 주장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현대생물학은 모든 생물이 설계도와 같은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비행기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저절로 만들어질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비행기 엔진은 굉장히 복잡해서 수 백 만개의 부품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비행기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며, 누군가가 설계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설계했다면 분명히 비행기는 복잡한 구조를 알려주는 설계도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설계도란 집을 지을 때 기초는 어떻게 놓으며, 기둥은 어떤 재료로 어떤 모양으로 만들 것이며, 벽은 어떻게 하고, 지붕은 어떻게 만들 것이며, 창문은 어디에 만드는 등의 세부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몸도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오히려 비행기보다도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생물학은 DNA가 바로 생물의 설계도임을 밝혔습니다.
DNA는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의 핵 속에 들어 있는 물질로서 이중나선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4 종류의 염기로 되어 있습니다. 즉,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시토신(C)으로 구성되어 있는 염기들이 A와 T, G와 C가 각각 쌍을 이루어서 이중나선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DNA가 히스톤이란 단백질에 감기고 꼬여 핵 속에 저장되어 있는 형태를 염색체라고 합니다. 이 네 종류의 염기가 어떤 순서로 암호화 되어있는 가에 따라서 정보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즉 모든 생명체에 필요한 정보는 이 DNA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곧 우리 몸의 설계도와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누가 대체 생명체의 설계도를 제작했는가? 라는 질문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비행기의 설계도를 사람이 만든 것처럼, 생명체의 설계도가 존재하려면 창조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II.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1:26)라는 말씀은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특수한 존재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첫째로, 인간이 하나님과 같은 영적인 존재라는 뜻입니다. 인간만이 영성을 가진 존재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진화론이 인간은 동물로부터 진화된 동물중의 하나라고 가르쳐도, 온 세계를 살펴보면, 인종마다 풍습과 문화와 언어는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인간이 종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물의 세계에는 종교행위가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절대자를 찾고 부르고 예배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다고 하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닮았다는 말은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은 영적인 존재라는 뜻 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도록 창조되었고, 그렇게 살아갈 때만이 참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인간은 윤리적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도덕성은 하나님의 형상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인간으로 인간되게 하는 중요한 요소는 도덕성입니다. 인간이 인간되기 위해서는 의와 진실과 거룩함과 같은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도덕적 형상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의로는 자신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직 인간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함을 이루고 도덕적 형상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닮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벧전 1:15-16)“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10)”
창조주간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합시다. 이를 위해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고 기도를 회복하셔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영성과 거룩함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III. 청지기적 사명의 회복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 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 1:28).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피조물을 관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청지기로서, 관리자로서, 창조물을 돌보는 역할을 인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에서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정복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세상의 청지기로서가 아니라 정복자로서 자연을 자신 만을 위해 착취해왔습니다. 그 결과 많은 환경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자연의 3대요소인 공기, 물, 토양이 모두 오염되어 가고 있습니다. 결국 엘리뇨 같은 이상기후 현상, 오존층의 파괴 등등 모든 심각한 자연현상이 지구의 종말을 예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자연에 대한 청지기적 신앙을 가지고 자연에 하나님의 은총을 전달하는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환경보호는 작은 일부터 실천해야합니다. 분해되지 않는 쓰레기를 줄이고 또 잘 분리하여 처리하십시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질은 최대한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삶을 생활화 합시다. 이것은 청지기로서 모든 인간에게 명하신 창조자의 문화명령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합니다.
출처 : 창조 제146호, 2006년 7-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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