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C.S. 루이스

"인간은 양서류다. 반은 영이고 반은 동물이지. 그러니까 인간은 영적 존재로서 영원한 세계에 속해 있는 한편, 동물로서 유한한 시간 안에 살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의 영혼은 영원한 대상을 향하고 있지만 그 육체와 정욕과 상상력은 시시각각 변한다는 게야. 시간 안에 있다는 건 곧 변한다는 뜻이니까."

"지금 해야 할 일은 딱 하나야. 네 환자는 겸손해졌다. 환자가 그 사실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해 보았느냐? 미덕이란 인간 스스로 그것을 가졌다고 의식하는 순간에 위력이 떨어지는 법인데, 겸손의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지. 환자의 심령이 진짜 가난해진 순간을 잘 포착해서 '세상에, 내가 이렇게 겸손해지다니!' 하는 식의 만족감을 슬쩍 밀어넣거라. 그러면 거의 그 즉시 교만 - 자신이 겸손해졌다는 교만 - 이 고개를 들 게야. 혹시라도 환자가 위험을 눈치채고 이 새로운 형태의 교만을 다잡으려 들거든, 이번엔 그런 시도를 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게 만들라구. 이런 식으로 하면 네가 원하는 많은 단계들로 나아갈 수가 있다."

"원수(하나님)의 이상형은 하루종일 후손의 행복을 위해 일한 다음(그 일이 자기 소명이라면), 그 일에 관한 생각을 깨끗이 털고 결과를 하늘에 맡긴 채 순간에 필요한 인내와 감사의 마음으로 즉시 복귀하는 인간이다."

"우리는 시인과 소설가들을 동원하여, 인간들이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 별나고도 대체로 오래가지 못하는 경험만이 유일하게 믿을 만한 결혼의 근거라고 설득해 놓았다. 결혼한 후에도 이런 흥분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고 지속되어야만 한다고, 그렇지 못한 결혼생활은 더 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속삭였지. 이건 원수의 생각을 패러디 한 거란다."

"지옥의 전체 철학은 '하나의 사물은 다른 사물과 별개'라는, 특히 '하나의 자아는 다른 자아와 별개'라는 원칙을 인식하는데 있다. ... '존재한다'는 것은 곧 '경쟁한다'는 뜻이야. 원수의 철학은 이렇게 명백한 진리를 계속해서 회피하려는 시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는 모순되는 걸 목표로 삼고 있지. 그가 볼 때 만물은 여러 개인 동시에 어쨌든 하나라구. ... 그는 이 불가능한 일을 사랑이라고 부르는데, ... 원수는 또 유기체라는 걸 물질계에 만들어 냈지. 유기체란 각 요소들이 서로 경쟁하게 되어 있는 자연의 숙명을 거슬러 서로 협력하게 되어 있는 음란한 발명품이야."

"비겁함은 그 어떤 것보다 순수하게 고통스러운 악덕이지. 미리 생각할 때도 끔찍스럽고, 막상 겪을 때도 끔찍스럽고, 나중에 뒤돌아볼 때도 끔찍스럽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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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루이스란 인물은 익히 여러번 들어서 잘 알고 있었으나, 그의 작품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이 작품은, 편지라는 사뭇 파격적이고 일상적인 형식에다가 놀라운 그의 통찰력을 담아내고 있다. 쉽게 읽히는 듯 하면서도 결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아서 여러번에 걸쳐 연구하면서 읽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 식으로, 저자의 사상과 철학을 빠뜨면서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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