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 2010

계윤식 감독

이성재, 최지연, 강성진, 정경호, 유태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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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누군가가 이 영화 얘기를 했다. 내용을 대충 듣기로는 2002년도 한일월드컵 당시 북한 사람(군인)들이 한국에서 중계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라던지, 사선을 넘나드는 DMZ에서 남한 군인들과 함께 축구를 한다는 등지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다소 뚱딴지 같은소리긴 했으나 흥미를 끌기에는 충분했다. 그래서 오늘 주저않고 바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 중에는 북한과 관련된 영화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항상 그 내용은 남한의 입장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이 주를 이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표적으로 1998년도에 '쉬리', 그리고 2000년도에 개봉한 '공동경비구역(JSA)' 역시 사랑과 민족의 정(情)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남북간의 안타까운 분단 현실에 대해 조명했었다. 그러나 두 영화 모두 여전히 남한의 시각이라는 한정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08년도에 본 '크로싱'이라는 영화는 북한을 바라보는 내 눈을 확 뜨이게 해 준 파격적인 영화였다. 말로만 듣던 북한의 비참한 현실이 영상을 통해 내 뇌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전율과 감동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역시 영상의 힘이란 실로 놀랍다.) 그 영화는 - 내가 본 것 중에서는 - 이전까지 남한에서 만들던 남북관계를 소재로 하는 영화와는 달랐다. 남한이 아닌 북한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영화였다. 이는 아마도 그동안 남북경제협력(개성공단, 금강산 사업 등)이라든지의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교육적 측면 등에서 활발한 교류가 이뤄짐으로서 가능해지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더군다나, 벌써 약 20,000명이라는 탈북자가 한국으로 망명나와 남한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고 있고, - 그 중에는 북한 권력 순위 20위였던 황장엽 씨도 끼어있다 - 이 곳, 미국에도 지금 현재 99명의 탈북자가 살고 있다고 하니, 북한 현실에 대해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도처에서 열린셈인 것이다. 얼마 전에 한 탈북 여성으로부터 전해 듣기로는, 영화 '크로싱'에서 묘사된 북한의 실상황이 오히려 더 심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처럼, 이제는 북한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깊이와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아무튼, 크로싱을 보면서 느꼈던 그 충격과 감동은 여전히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영화 역시, '크로싱'이라는 영화와 그 틀을 함께 한다. 북한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영화. 더욱이 2002년 한일 월드컵이라는 남측에게도 역시 친숙한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더욱 더 쉽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영화 속에서, 북측 병사들과 남측 병사들이 함께 어우러져 '대~한~민~국!'이라는 응원구호가 아닌, '우~리~민~족!'이라는 응원구호를 함께 외칠 때는 나도 모르게 스크린 앞에서 똑같은 구호를 함께 외치고 있었다. 두 눈시울은 붉어진 채로.

계윤식 감독을 비롯하여 제작자가 무슨 의도를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이유가 북한에 대해 좀 더 남한 사람들이 열린 시각을 가지게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 였을 것이고, 분열된 조국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자극하여 아마 남한 사람들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희망과 열정을 불러일으키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극히 내 주관적인 추론에 의하면, 이 영화 역시 북한에 들어갈 터이고, 그러면 북한 내부 사람들에게도 당에 대한 불만과 조국 통일에 대한 염원을 호소하는 강장제의 역할을 기대했을 것 같다. 여담이지만, 탈북한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많은 수의 한국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서양영화들도 대거 북한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한다. 한 연구기관에 의하면 북한 전체 주민의 60%가 외부 문물에 노출되었을 것이라고 잠정 추정하고 있다. 물론, 도심지나 국경지역 같은 경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외부 정보와 접했을 것이다. 재밌는 사례로는, 한 탈북자의 경우, 김래원, 문근영이 주연했던 한국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를 즐겨 봤다고 하고, 한번은 평양에서 영화 '타이타닉'이 일파만파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흥행을 하자 북한 당국에서 '타이타닉'과 관련해서 공식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내용인 즉슨, '타이타닉'은 자본주의의 운명을 선명하게 나타내는 영화로서, 결국 타이타닉 호가 마지막에 가서 두 동강이 나서 바닷속으로 침몰되듯이, 자본주의 역시 그렇게 될 운명이라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처럼 이 영화 역시 북한으로 넘어가서 북한 주민들이 볼 가능성이 크다는게 내 생각이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잘 만들어졌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동시에 내용 자체가 너무 위험하지 않는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남북을 한 민족으로 보고, 북한 동포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그와 동시에 휴전현실에 대해 망각해서는 절대 아니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번도의 현실은 말 그대로 휴전상태다. 전쟁의 참혹한 현실로부터 너무 시간이 오래 흘렀고, 그래서 대부분의 오늘 날 사람들은 전쟁의 기억조차 없으며, 또한 제 살기 바쁘고, 물질 문명 속에 정신없이 허우적 거리다 보니 이러한 현실에 대해 망각할 때가 많아서 그렇지, 그래서 오히려 우리나라 밖에 사람들이 얘기하듯 '안보불감증'에 걸려서 그렇지, 전쟁의 위험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래, 다시 말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래서 수많은 젊은 남자 청년들이 자신들의 청춘을 희생해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푸른 옷을 입고 총을 들고 밤을 지새워가며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 맞다. 우리의 적은 북한의 김정일 예하 당정군이지 북한 주민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래서 사실 '크로싱'이라는 영화는 북한 주민들을 소재로 했기에 좀 더 편하게 방어벽없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영화 '꿈은 이루어진다'는 다르다. 그 소재 자체가 북한 군인들이지 않은가. 물론 북한 군인들도 남한 군인들도 머리로는 얼마든지 우리 모두 한 민족이고, 한 핏줄과 한 뿌리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이 나게 되면, 그들의 손은 각자 가진 총을 들고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눌 것이다. 그리고는 '나라와 이념'라는 명목으로 서로가 서로를 죽일 것이다. 따라서 총이 서로의 손에 있다는 것 자체만 보더라도 결코 우리의 방어벽을 허물어서는 안된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군대에서 이 영화를 과연 군인들에게 볼 수 있도록 허용할지 의문이다. 한데 뭐 이미 개봉했다고 하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벌써 사람들에게 상영 허용을 헸다는 말이고, 그러면 군인들 역시 휴가 나가거나 하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히 지적하지만 방어벽 없이 이 영화를 그대로 받아들였다가는 웃기는 꼴이 날 수 있다.

결론을 맺겠다. 이 영화는 잘 만들어 졌으나 사실감은 떨어진다. 북한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고, 분단된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자극해주며 조국 통일에 대한 희망과 열정을 적절히 불러일으킨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코믹스럽게 영화를 만들다보니 사실감이 떨어지며, 어떻게 보면 환타지같은 느낌까지 든다. 아마 감독이 자신의 희망사항을 표출한 것으로 생각된다. DMZ라는 땅이 결코 함께 어우러질 수 없는 지역이 아닌, 그곳에서 함께 축구도 할 수 있고, 함께 응원하면서 축구 경기도 시청할 수 있는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그런 감독의 희망일 것이다. 마치 2002년도에 대한민국 온 국민의 꿈, 16강 진출이 이뤄지고, 더 나아가 4강까지 올라가는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 그런 기적적인 조국 통일의 꿈, 그리고 DMZ에서 북한 사람들과 함께 아무런 죄없는 공을 차면서 서로의 어깨를 부딪치면서 웃을 수 있는 날이 어서 속히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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