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는 '강요의 종교'가 아니라 '매혹시키는 종교'이다. 즉 행동을 강요하는 종교가 아니라 바라보는 대상을 바꾸게 하는 종교인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기독교란 '눈 바꾸는 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심령의 눈을 바꾸어 주고,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목회를 한다면 영혼들은 흥분하기 시작하고 그들의 마음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화되어갈 것이다.
설교자들이 설교하고 내려오면 성도들이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인사치레를 한다. 그러면 설교자들은 우쭐해져서 "역시 나는 설교의 은사를 타고 났어!" 하면서 만족해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다. 진짜 복음이 증거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되었다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다. 오직 자신의 영혼의 문제, 자신의 운명을 놓고 고민하고 부르짖게 된다. ... 복음은 죄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와 직면하게 만든다.
교회에는 크게 세 종류의 사람들이 옵니다. 죽은 자, 병 든 자, 잠자는 자. 영적으로 죽은 자가 있으면 죽었다는 진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내야 합니다. 병 든 자가 있으면 병 들었다는 평가가 아니라 고쳐내야 합니다. 잠자는 자가 있으면 꽹과리를 치고 나팔을 불더라도 깨워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요 존재 목적인 것입니다.
"My message, my preaching were not with men's wise and persuasive words, but with a demonstration of the Spirit's power, so that your faith might not rest on men's wisdon, but on God's power."-1Cor.2:4-5
예수님은 제자들의 무능을 보시고 분노하며 책망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O unbelieving generation," Jesus replied, "how long shall I stay with you? How long shall I put up with you? Bring the boy to me.""(막9:19)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If we are out of our mind, it is for the sake of God; if we are in our right mind, it is for you."
헤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어두워져야 날기 시작한다" : 어떤 일을 마치고 난 다음에서야 지혜가 떠오르는 것을 얘기한다.
마이클 호튼, "오늘의 경건주의자는 내일의 자유주의가가 된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감정과 체험에만 의존하다 보면 결국 나중에는 신앙마저 저버리게 된다.
까뮈의 '시지프스의 신화'에 묘사된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형벌 : 무의미
그 형벌은 큰 바위돌을 산곡대기에 올렸다가 떨어뜨리고, 또다시 올렸다가 떨어뜨리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형벌이라는 것이다.
기도를 할 때 상대방의 심정에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예수의 마음이요, 교회가 품어야 할 마음이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대가 변해도 변함없는 기도, 말씀, 선교의 사역이다. 이 본질을 외면하고 다른 것을 아무리 잘 감당한다 할지라도 그 사역은 결코 정상적인 사역이라고 할 수 없다.
'책상신학'과 '현장신학'
책상신학은 양 떼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당위'를 강조하는 비판의 칼날은 예리한데 그들을 어떻게 구원시키며, 건져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의 몸부림'은 없다. 한마디로 '무엇what'은 있는데 '어떻게how'가 없는 것이다. 이들의 말들은 화려할지는 몰라도 실제로 영혼을 살리는 데에 있어서 이들의 존재는 매우 미약하다.
반면에 현장신학을 하는 분들의 글들을 보면 구태의연하다는 느낌과 답답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 분들은 글을 통해서 만나면 안되고 현장을 통해서 만나야 한다. 이들은 기도의 사람들이다. 왜냐면, 기도없이는 목회가 안되기 때문이다.
지난 번에 있던 교회에서의 일이다. 대학부를 맡은 초창기의 일이다. 거의 피와 땀을 쏟아 가며 설교를 준비했다. 설교 내용에 있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잘 정돈된 말씀을 증거했다. 많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영혼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라성과 같은 말씀이 증거되는데 영혼이 변화가 되지 않는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낭패가 있겠는가? 즉시 기도원에 올라갔다. 3일 정도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다. 나의 양 떼들의 변화를 허락해 달라고 부르짖었다. 그때 내 가슴 가운데 뜨거움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말씀 증거의 확신과 변화의 확신이 왔다. ...
특별히 목회자에게 있어서 기도 시간은 하나님께서 작성하신 설교 원고를 받아 적는 시간이다. 어떤 때는 기도하는 자리에서 설교의 모든 부분을 다 받아 적어 더 이상 설교 준비할 것이 없을 때도 있었다. 이런 설교는 항상 모든 성도들을 복음의 영광 가운데 이끄는 설교였다.
'그럼 왜 성도는 약할 때가 더 강한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을 더 간절히 의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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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었던 책. 이 책은 기도의 책이다. 기도하도록 만드는 책이다. 무릎을 꿇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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