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 이재철

목적이란 인간이 궁극적으로 다다라야 할 종착점을, 목표란 그 종착점에 다다르기 위한 방편을 의미한다.

나는 구걸을 하면서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당신의 황금마차가 화려한 꿈처럼 나타났습니다. 나는 왕 중의 왕이 과연 누구일까 몹시 궁금하였습니다. 나의 희망은 하늘 높이 날아 올랐습니다. 나는 모든 불행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구걸을 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당신이 베풀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흙먼지를 따라 뿌려지는 보배를 기대하면서 나는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마차는 가까이 다가와서 멈추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다가오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나는 드디어 행운이 순간이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오른손을 내밀면서 말을 하였습니다.
"나에게 무엇을 주려고 하는가?"
아, 당신은 헐벗은 거지에게 손을 내밀면서 구걸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왕다운 장난이었습니다. 몹시 당황했던 나는 가만히 서 있다가 가방 속에 들어있던 곡식의 낱알을 꺼내서 바쳤습니다. 날이 저물어서, 나는 가방 속에 들어있던 것들을 모두 바닥에 쏟아 놓았습니다. 나는 초라한 물건들 가운데에서 작은 금구슬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무척 놀랐습니다. 나는 소리를 내면서 슬프게 울었습니다. 당신에게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는 마음을 내가 가지고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타고르, 기탄잘리 중> ... 자기에게 집착하는마음을 버려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본 교회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일본은 크리스천들이 전 국민의 1퍼센트밖에 되지 않기에 기독교의 불모지라고 불린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한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한다. 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일본의 기독교인들은 철저한 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일본인들처럼 세례를 받기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세계에 없다.
- 일본은 우찌무라 간조 같은 세계적인 신학자를 배출했다.
- 가가와 도요히꼬와 같은 세계적인 사회봉사자를 배출했다.
- 엔도 슈사꾸 같은 위대한 가톨릭 문인을 낳았다.
- 미우라 아야꼬처럼 온 세계 사람들이 사랑하는 개신교 작가도 있다.
- 일본은 전체 크리스천 수에 비해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로 알려지고 있다. 100만 명에 불과한 크리스천들이 무려 300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3천명 당 한 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것이다.

"바닷물 속에 포함되어 있는 불과 2.8퍼센트의 소금이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한다."

직업
흔히 사람들은 성직과 세속직은 구분해서 말을 한다. 만약 목회자가 이 세상의 모든 직업은 다 세속 직업이고 목회직만이 성직이라고 말을 한다면, 그것은 성직자의 교만이요 독선이다. 반대로 목회자가 아닌 사람이 목회직만이 성직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죽어도 주를 위해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직업을 선택해도 주를 위해서 선택해야 할 크리스천으로서의 직무유기다.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 더 많은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직업이나 직장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모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거룩한 직업이요 직장이 된다.

비전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나의 비전을 이루려 한다면 그것은 100퍼센트 망상이요 야망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비전'이 아니라,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친히 이루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이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비전을 나의 비전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자체를 우리의 비전으로 삼아야 한다. 그 때에만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초월하여, 우리를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이 이 땅에 펼쳐질 수 있다.

신앙
미신과 신앙의 차이?
미신은 인간이 자기에게 있는 돈이나 능력 혹은 재주로 신의 마음을 달래고 얼러서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려는 것. 즉, '자기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
참된 신앙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 마음에 새겨야 할 세 가지
1.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
2. 크리스천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를 의미한다는 사실
3. 어느 곳에서든지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편139:7

애국
크리스천이 추구하는 애국 애족이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을 종착역이 아닌 시발점으로 삼을 때, 어떤 경우에도 민족주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ex1) 마태 10장 : 주님께서 열두 제자를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하지만 주님께서 마지막 이 땅을 떠나실 때에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라고 말씀하셨다.
ex2) 롬9:1-4a, 사도바울의 고백,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이것을 증언하여 줍니다. 내게는 내 동족을 위한 큰 슬픔이 있고, 내 마음에는 끊임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내 동족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의 애국 애족은 왜 처음부터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일까? 왜 자기 민족을 먼저 사랑하고서야 그 사랑이 확대되어 가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
인간이 갖고 있는 사관의 종류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왕조 사관과 민중 사관, 황국 사관과 식민 사관, 개인주의 사관과 민족주의 사관, 관념론 사관과 유물론 사관, 문명주의 사고나과 사회경제주의 사관 등 참으로 다양한 사관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헬레니즘에 입각한 인본주의 사관이라는 점이다.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사관은 헬레니즘 사관이 아닌 헤브라이즘 사관, 즉 신본주의 사관(구속사관)이어야 한다.
ex)유대 역사에 대한 사도 바울의 설교 내용 중(행13:13-23) 사용한 동사
"택하시고, 높여, 인도하여 내사, 참으시고, 멸하사, 주시고, 주셨더니, 주셨다가 폐하시고, 세우시고, 약속하신, 세우셨으니"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욕구를 지니고 있기에, 그 욕구에 부응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다음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곤 한다. (말씀을 끝까지 들어라!!)

효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
- 열 살이 되기 전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무엇이든 못하는게 없는 슈퍼맨
- 10대가 되면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이내 알게 된다. 아버지는 모르는 것도 많고 못하는 것도 많은 대수롭지 않은 존재.
- 20대가 되면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다. 아버지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 맞는게 하나도 없다.
- 30대가 되어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면, 아버지 말씀 중엔 가끔 맞는 말도 있더라는 평가를 내린다.
- 40대가 되면, 아버지 말씀 중에는 귀담아 들을 만한 이야기가 많다고 여긴다.
- 50대는, 이럴 때 아버지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실까 생각하게 된다.
- 60대가 되면, 아버지의 말씀이 다 맞습니다 라고 고백하지만 그 때 그의 부모는 더 이상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엥겔 계수 : 전체 생계비 지출 총액에서 음식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
- 엥겔 계수가 높을수록 후진국에 속한다.

산업은 인생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그 길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정치는 우리가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할지 바른 삶의 길을 보여주지 못한다. 모두들 경제와 기술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인간이 진정 어던 삶을 추구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만큼은, 사람들은 영감에 찬 종교인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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