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의 전쟁, 정진호

죄Sin : 선악과 - 불신앙 - 교만 - 탐심 - 불순종 - 전쟁
치유Healing : 십자가 - 믿음 - 회개 - 자유함 - 순종 - 평화

* 세가지 유혹









타락. 실낙원의 순간, 인간은 에덴의 풍요를 상실하고 가난해졌다. 존재보다 소유를 선택하였지만 그 결과는 반대가 되고 만 것이다. 인간이 직면하게된 가난은 단순한 육체적, 물질적 가난뿐만이 아니었다. 하나님과의 대화 단절에서 비롯된 영적 가난, 그리고 인간 사회의 소외 현상에서 비롯된 억압과 핍박의 사회적 가난, 자연과의 불화에서 자초한 생태학적 가난으로까지 이어졌다. 총체적 가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영적, 육적인 궁핍 속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웅크리고 있는 자들, 그들을 살리기 위해 그리스도가 왔던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러 왔노라 가난한 자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자신의 가난함을 인정하고 복음을 받으라 그리할 때 너희는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하나님의 주권과 자신의 선택, 즉 섭리와 자유 의지 사이의 미묘한 긴장 관계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모든 것을 선택하며 순간을 살아가는 것 같은데, 사실은 하나님의 주권이 그것을 이끌어 간다는 모순. 지구 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인간은 지구의 공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듯, 우리 인생의 절대 기준은 더 큰 척도 안에서 운행되고 결정되고 있다는 인식. 그러나 그 속에서 누리는 선택의 자유와 중요성은 지구의 공전 궤도마저 바꿀수도 있다는 역설로 강조해도 될 것이다.
*롯에 대한 해석(p59-65)
롯이 소유에 대해 집착하는 근거
1.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조카 롯에게 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먼저 주었을 때, 롯은 애굽 시절에서 경험했던 도시 문화의 풍요한 안락함을 회상하며 약속의 땅 가나안을 버리고 요단 동편의 성읍을 선택한다. 당시, 롯의 심경 : "마치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13:10)
(하루 속히 지긋지긋한 유목 생활에서 벗어나 독립하여 도시로 가서 살자고 충동질하며 옆에서 부추긴 것은 롯의 아내였을 수도 있다.)
2. 이후 더 크고 화려한 도시를 사모하던 그들은 요단 평지에 속한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죄악의 도시 소돔 성으로 들어간다.
여러 도시들의 치열한 전쟁에 휘말린 그들은 결국 전쟁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지만, 아브라함이 318명의 훈련된 부하를 이끌고 야간 기습을 하여 롯을 구해준다.
3. 이때 만일 롯이 정신을 차렸다면 죄악의 도시 소돔을 떠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롯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소돔으로 돌아간다.
4. 마침내 천사들이 롯과 그의 가족들에게 떠나라고 했을 때, 그들은 망설인다. 아니 떠나지 못한다. 그래서 천사들이 강제로 그들의 손목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었다고 성경에서는 말한다. 그러면서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멸하라"고 말하지만 롯의 아내는 미련을 버리지 못해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기둥이 되고 만다.
5. 그 와중에서도 롯은 천사들에게 작은 성읍 소알로 자신들의 피신처를 삼게 해 달라고 안간힘을 쓴다. (창19:17-22)
하나님이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시어 그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소알 성읍은 멸망을 면케하셨음을 보게 된다.
6. 그러나 롯은 다른 도시들이 멸망하는 것을 보자 하나님께서 소알 성읍에 살도록 보장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불신앙이 솟아올라 다시 산으로 도망가고 만다. 두 딸과 함께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 도시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고 굴혈인이 되어 폐인 같은 생활을 했던 그는 자신이 이미 음욕의 제물로 내어주었던 두 딸로(: 천사들이 소돔성읍에 들어왔을 때, 소돔인들이 천사들을 내놓으라고 할 때 대신 딸을 주겠다고 했었다.) 하여금 근친상간을 저지르게 해 인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

















대폭발 이론에 근거하여 현재 모든 행성 간에 멀어지고 있는 속도를 역산한 우주의 나이는 130억 년에서 최대 200억 년가지 추정되고 있고, 우주의 크기는 200억 광년이며, 그에 따른 우주의 크기는 2천조 킬로미터라고 생각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 무려 천 억 개의 은하와 각 은하마다 다시 천억 개의 별들이 존재한다고 천문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10의 22승개의 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데, 우리 손에 쥘 수 있는 흑연 12그램 한 덩이 속에 온 우주의 별의 숫자보다도 더 많은 6.02x10의 23승개의 원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 하나의 원자 속에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소우주가 존재하고 있다.
하나님의 저울에 온 우주와 한 생명을 달아 비교해 보면, 우리 인간의 눈에는 거대해 보이는 우주도 한 생명 안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에는 미칠 수 없는 왜소하고 가벼운 것임을 알게 된다.

"자연과학과 신앙의 세계는 모두 경이wonder에 기초하고 있다." - 아인슈타인

내가 중국에서첫 제자를 얻던 날, 나 역시 똑같은 체험을 했다. 너무나 기쁘고 배가 불러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기가 싫었다. 아니 먹을 수가 없었다. 이런 경험을 해야 한다. 영적 배부름의 경험. 온 우주를 바꾸어도 줄 수 없는 한 생명의 가치를 깨닫는 경험. 이것이 우리의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생명 가치를 물질 가치와 맞바꾸는 일, 그 가치 역전만이 참된 인생역전이다.

애굽의 노예 생활에 깊이 물든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돌려 애굽을 떠나도록 하는 것은 바로의 마음을 돌리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애굽에 내린 열두 가지 재앙은 바로의 마음을 두렵게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도록 하기 위한 것뿐 아니라, 그것을 함께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9)고 하신 말씀이나, 누가복은 14장에서 부모, 처자, 형제, 자매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며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신 말슴도 의미를 바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모든 소유를 버려야만 제자가 된다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그 모든 것보다 복음이 우선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복음보다 소중하지 않다는 뜻이다. 복음은 곧 생명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떤 소유 가치도 새염ㅇ 가치보다 앞설 수 없다는 예수 특유의 강조적 어법이다. 예수의 가르침 속에는 가족과 소유를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라는 불교적 출가의 개념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소유를 인정하되 그것을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도록 생명 가치 앞에서 소유를 상대화하라는 것이다.
(cf.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사도들도 사역 현장에 아내를 데리고 다녔다. 고전9:5)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사후복음의 대책이 다 마련된 사람인데 왜 자꾸 노후 책 노후 대책 하십니까?"

떡의 존재 가치는 먹히는 데에 있다. 자신은 조각조각 찢기고 씹혀서 사라지나 그것을 먹는 사람은 배부르게 해 살리는 것, 그것이 떡이 존재하는 이유다. 따라서 예수의 제자 된 우리도 그 같은 떡의 인생을 살도록 요청받는다. 한 조각의 떡이라도 더 먹으려고 아귀다툼을 하는 이 세상 속에서 거꾸로 자신의 떡을 떼어 죽어 가는 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나누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의 제자 된 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

복음의 대상인 가난한 자들이 과연 누구인가? 첫째, 영적인 궁핍 상태; 둘째, 물질적 궁핍 상태.
주는 것의 미학 (눅6:20-38)
1. 그 대상을 제한하지 말아라. 원수까지도.
2. 주되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주어라.
3. 주는 사람의 마음가짐.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며, 정죄하지 말고, 모든 것을 용서한 후에 주라.
4. 주되 마음껏 후하게 담아 주어라.
그렇게 주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조금씩 가난해진다. 그리고 복음의 정수와 핵심을 배워가게 된다. 예수를 통해 나타난 베풂의 미학, 다 주어 버림, 철저히 가난해지는 삶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그리할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저들은 진정 예수의 제자들이다'라며 인정하게 될 것이다.
행위는 믿음의 결과다. 만일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믿는 바른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렀다면, 그는 반드시 선한 행위로 자신을 던져 이웃을 위해 살아가게 되어 있다.
*가짜 구원 : 믿음faith + 행위work = 구원salvation
진짜 구원 : 믿음faith = 구원salvation + 행위work
*개성 : 개같은 성질
독종 : 독특한 종자
신정정치와 청지기 경제의 핵심은 모든 정치적 권력과 물질적 재부의 소유는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인간은 그것을 위임받아 다스리는 청지기로 살아가라는 요청이었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타락한 죄성으로 인한 권력의 불평등과 부의 불균형이 발생할 것을 이미 예측하고 계셨기에 그것을 조정하여 다시 재분배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장치와 제도를 마련해 두셨다.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십일조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 명령과 안식일과 안식년 제도를 통한 절제와 희년 제도들은 물질의 재분배를 통해 영구적인 빈부의 격차가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억제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빠지는 함정과 오해가 여기에 있다. 위대한 일, 큰 일을 행한 직후, 자신이 그 일을 행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위기가 닥친다. 그리고 이전의 그 놀라운 믿음은 어디로 갔는지 순식간에 사라지고, 깊은 회의와 패배감이 닥쳐오게 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이나, 학문을 연구하는 일, 설교를 하는 일, 연주를 하는 예술 활동 등의 본원적 가치를 무시하고 그 모두를 명예욕으로 위한 것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여인의 아름다움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도 아니며, 화장하는 여인들을 무조건 비판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 행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의 영적인 상태에 따라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죽인 자들은 로마인들이 아니었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글을 쓰던 유대인들, 가장 가까운 친족들, 예수를 따른다고 좇아가던 제자들, 종교 지도자들이라고 일컫던 바리새인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시기 질투에 의해 예수는 참소당하여 십자가로 끌려간 것이다.
오늘 날도 예수의 이름을 훼방하는 가장 큰 원흉은 이방인들이 아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몰려드는 무리들, 교회에서 큰소리치는 집사, 장로들, 예수를 가르치고 전하겠다고 나선 목사와 선교사들 때문에 예수의 이름이 짓밟힌다.
종servant
1. 섬기는 자 2. 순종하는 자 3. 일하는 자
예수님 소개
- 온 천하의 권세를 한몸에 지닌 지상 최대의 권력자로 세상에 나타나실 수도 있었던 분
- 그러나 그 권세를 스스로 버리고 가장 낮고 비천한 구유에서 태어나셨던 분
-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자라 순종으로 가족을 섬기셨던 분
- 겸손히 무릎 꿇어 세례 받으실 때 하늘 문이 열리며 축복받으셨던 분
- 광야에서 시험받으며 사탄의 떡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셨던 분
- 성전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었던 명예욕을 뿌리치셨던 분
- 천하만국의 영광과 권세를 주겠다는 사탄의 유혹을 말씀으로 제압하신 분
- 그러나 그 말씀의 권세로 세상의 수많은 권력자들을 놀라게 하셨던 분
- 사랑의 권능으로 기적을 일으키며 가난한 자들을 배불리 먹이신 분
- 소경 된 자들을 보게 하고 억눌린 자들을 자유하게 하신 분
- 성전을 청소하시며 불의한 장사치들을 쫓아내신 분
- 세상 권력자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으셨던 분
- 그러나 세상의 불의와 위선을 추상같이 질타하며 꾸짖으신 분
- 수많은 무리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자신을 높이지 않으신 분
- 자신을 따르던 추종자들의 손을 피해 스스로 왕위를 뿌리치신 분
- 자신의 몸을 생명의 떡으로 제자들에게 먹이신 분
- 제자들을 사랑하여 종의 모습으로 낮아져서 그들의 발을 씻기신 분
- 자신을 배반할 제자를 알고도 끝까지 사랑하여 모른 체하신 분
- 자신이 배반당하여 체포될 것을 알면서도 도망가시지 않은 분
- 사랑하는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갈 것을 미리 알고 알려 주신 분
- 자신의 몸이 찢기고 피가 흐를 것을 알고 두려워하셨지만 그 잔을 피하지 않은 분
- 배반의 현장에서도 평온을 잃지 않고 반항하시지 않은 분
- 대항하는 제자들을 오히려 꾸짖어 칼을 버리도록 명하신 분
- 붙잡혀 갈 때도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온순하게 끌려가신 분
- 법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입을 열어 변명하시지 않은 분
- 온갖 모욕과 치욕과 고문을 당하면서도 인내와 순종으로 참으신 분
-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 받을 때도 자신을 못박은 원수들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하신 분
-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와 떨어지기 싫어하셨던 분
-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사명을 완수하고 숨을 거두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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