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Philip Yancey

매주 나는 감동했다. 비닐장판 하나 달랑 깔아서 제아무리 아름다운 꽃으로 치장해도 초라함을 감출 수 없던 성구실, 내 그토록 귀하게 여겼으나 음악에 무지한 회중들의 입에서 수모당하는 찬송, 피곤하기만 한 성경봉독, 기다려도 줄지 않는 지루한 성찬 참례 대열, 아무런 의미도 없이 나열되는 설교, 회중들의 무지와 초점 없는 표정, 이 모든 것에 나는 매주 감동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토록 초라하고 지루한 예배였기에 놀라운 일이었으리라. 그렇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가 다시 왔다는 사실, 매주 다시 나타나서 예배의 전례를 끝까지 마친다는 사실은 정녕 놀라웠다.

"홀로 떨어진 고고한 영혼은 ... 홀로 타는 석탄과 같다. 그 불길은 이제 식는 일만 남았다. 더 이상 뜨거워지지 않을 것이다."- Saint John of the Cross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 둘 있다. 하나는 결혼이고, 또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Paul Tournier

교회에 가면 1.위를 보고 2.주위를 보고 3.밖을 보고 4.안을 보아야 한다.

1. 위를 보고
교회는/예배는 사람들이 구경하러 가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구경하는 관람객이다.
"오늘 내가 예배에서 무엇을 얻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예배로 오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는가?"를 물어야 한다.
교회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점에 미치지 못하면 교회는 그 무엇에도 미치지 못한다.

"예배란 집주인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행위" - Walter Wink

2.주위를 보고
출신, 배경을 떠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
하나님의 가족이란 일치를 추구하되 획일이 아니며, 다양성이 추구하되 분열이 아닌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3. 밖을 보고
"교회는, 자신의 일원이 아닌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에서 유일한 공동체"-대주교, William Temple

타인을 섬기려는 마음이 분주하면 나 자신을 그만큼 덜 생각하게 된다.

<흙의 비유> "교회란 거름과 같다. 거름은 한 곳에 쌓아두면 이웃에 악취를 풍긴다. 그러나 땅에 골고루 뿌리면 세상을 비옥하게 한다."-Luis Palau

4. 안을 보다
하나님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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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 세상의 방식과는 현격하게 다른 새로운 표상,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세상과 전혀 모순되는 표상을 세우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한다." - Karl Barth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
1. 마치 중독자 치료 모임 같이,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자각하고 하나님께 의지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
"사실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지.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 아닌가? 그런데 교회 사람들은 대체로 자만의 냄새를 풍기고 있네. 자기들은 누구를 의지 안 해도 독실하고 우월하다는 얘기겠지. 나는 그들에게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네. 하나님은커녕 자기들끼리도 의지하지 않고 있지. 또 그들의 삶은 당당하고 안정돼 보여서 알콜중독자들이 거기 가면 열등감밖에는 느낄게 없다네." "이상한 일이지만, 내가 그토록 증오하던 알콜중독 때문에 나는 오히려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네. 그래서 나는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알지. 나는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술과 싸울 수 있다네. 글쎄, 그런 뜻에서라면 알콜중독도 나를 구원하는 데 한몫 한 거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 같은 중독자들을 부르신 것은 다른 성도들에게, 그분을 의지하는 게 무엇인지, 이 땅에서 그분의 공동체를 의지하는 게 무엇인지 가르치라고 하는 거 아니겠나!" - 중독자 치료 모임에 다니는 어느 알콜 중독자의 이야기.

"내게는 이제 죄가 필요없다. 이제부터는 죄가 아니라 죄인을 찾아다니겠다!"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이 말을 할 수 있는 곳이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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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에서 섬세함이란 아주 단순하게 말해, 다른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 마음의 결을 맞추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눈물을 먹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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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왜 바울의 고통을 그대로 두셨는가? 바울 자신이 딱부러지는 이유를 댄다. "잔뜩 교만해질까봐"(고후12:7)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방 있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리고 바울은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고 있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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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간청하는 사람은 모두 치유해 주되, 만나는 사람을 모두 치유해 주지는 않았다. 그분은 인간이 스스로의 고통을 끌어안을 권리를 인정했다. 이것은 무관심이 아니다.
cf. 부자 청년의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했고, 떠나가는 그를 붙들지 않았다. 마가는 예수의 조언을 거절한 부자 청년에 대해 명민한 주석을 달았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그를 사랑하사 가라사대"(막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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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 지역교회의 많은 목회자들에게는 이와 같은(격려와 자기쇄신) 공동체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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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하나님은 공평하므로 삶도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삶이 아니다. 삶의 상황에 따라 하나님과 관계 맺는 다면 그것은 항구적인 관계가 못된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상황에 흔들림 없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형성시켜 나간다면, 우리의 육체적 실재가 무너져도 능히 견딜 만할 것이다. 우리는 그 모든 삶의 불공평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성경의 인물들 모두 역경을 딛고 하나님을 든든히 붙들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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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이 말랐으면 더 깊이 파야 한다."
밖으로의 여행을 지속하려면 안으로의 여행에 더 마음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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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정확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우리 인간으로 구성된 것이기에, 사명에 실패하고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다. 그것이 하나님의 모험이다. 완벽을 기대하고 교회에 들어가는 자는 이 모헙의 보질도, 인간 조건의 본질도 이해하지 못한다. 연애의 낭만적 감정이란 결국 어떤 깨달음으로 귀착하는가? 결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비로소 사랑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라는 인식 아닌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교회란 비로소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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