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38절부터 마지막까지 중에서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볼께.
첫째, 예수님의 기적
둘째, 대제사장의 예언
첫째, 예수님께서 죽어서 무덤에 안치된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의 내용. 이 내용과 관련해서 생각한 부분을 몇 가지 나눌께. 먼저, 개인적으로 이 사건이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나타내신 마지막 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조사를 좀 해보니 아니더라고. 요한복음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다른 세 복음서에 이 사건 이후에 예수님께서 소경 바디매오를 고치셨다는 내용이 나오고, 또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때에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자르자 그것을 다시 낫게 하시는 기적을 일으키시는 내용이 있었어. (눅 22.51) 끝으로, 흥미로웠던 발견은, 예수님의 첫번째 기적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이었다면 마지막 기적은 바로 포도주를 자신의 피로 변화시키는 기적이었다는 점이였어. 즉, 예수님의 기적의 완성은 단순히 몸을 씻기는 물을 변화시켜 우리의 더러운 죄까지 말끔히 씻어버리는 보혈의 피로 변했다는 것을 나타내시는 것이 아닐까 싶어. 한데, 한 가지 의문이, 4복음서에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사건은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동일하게 포함시키는 것을 보게 되는데 (예수님 십자가 사건, 부활 사건 등) 왜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신 기적은 요한복음에밖에 포함되지 않았을까라는 점이야.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엄청난 사건은 4복음서에 포함시켜도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지. 이유가 뭔지 아직 잘 모르겠어.
둘째, 49절부터 53절의 내용을 보면,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님의 죽음을 정당화시키는 말을 하지. 사실 이전부터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잖아. 하지만서도 예수님을 죽일만한 근거와 명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갈등하고 있었는데 가야바의 발언을 통해 이제는 예수님을 죽여도 되겠다는 확고한 명분이 서게 된거야. 가야바가 이렇게 말했지. "You do not understand that it is better for you to have one man die for the people than to have the whole nation destroyed" (v50) 즉,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다른 모든 사람들과 나라 전체가 망하게 되는 것보다 낫다. 이게 얼마나 합당하고 정당한 명분이겠어. 예수님 한 사람만 죽이면 모든 사람과 나라 전체가 산다고 하는데 말야.
지는 전쟁은 명분이 없는 전쟁이라는 말도 있듯이 명분 없는 전쟁과 싸움처럼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든게 없거든. 하지만 이제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전과는 달라졌어. 그들의 이러한 확고함이 나중에 본디오 빌라도가 본인 스스로는 예수님을 죽일 아무런 합당한 이유가 없다고까지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강도 바라바를 살려주면서까지,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반드시 죽여 마땅하다고까지 말하게되는 근원적인 힘이 아닐까 싶어. 이를 통해서, 잘못 들어서게 된 명분은 참 위험한 것이 아닐수가 없다는 것을 보게 돼. 결국 끝장을 볼때까지 가고, 결국엔 가서는 후회로 남게되지.
하지만 더 흥미로운 사실은, 51절부터 53절까지 나와있듯, 대제사장 가야바의 발언 역시 하나님의 개입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돼.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과 흩어진 그의 자녀들을 모아 하나게 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사실. 결국 대제사장 가야바의 발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되고,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오늘 날도 계속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그 구원의 능력이 전세계 가운데 널리 퍼져나가며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개입과 놀라운 계획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
적용: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의 피의 능력을 경험하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하심을 믿고 의지하며 오늘 하루 가운데 하나님을 주로 모시고 겸손하게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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