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후에 다시 그의 집으로 찾아가시지. 그리고 2절에 나와 있듯, 그들이 예수님을 위해 저녁을 준비했대. 큰 언니 마리아는 음식을 나르고, 오빠 나사로는 예수님 곁에 함께 앉아 있고, 막내 마리아는 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고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래서 집안 전체에는 그 비싼 향유 냄새로 가득차게 되었지... (음식 냄새가 아니고 말야...)
이번 말씀에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 두 가지가 그 뒤에 나오는데, 첫번째는 마리아의 행동에 대한 반응이고, 두번째는 마리아의 행동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지.
4But Judas Iscariot, one of his disciples (the one who was about to betray him), said, 5‘Why was this perfume not sold for three hundred denarii and the money given to the poor?’ 6(He said this not because he cared about the poor, but because he was a thief; he kept the common purse and used to steal what was put into it.) 7Jesus said, ‘Leave her alone. She bought it so that she might keep it for the day of my burial. 8You always have the poor with you, but you do not always have me.’
두 사람의 반응이 매우 상반되는 것을 볼 수 있어. 먼저, 유다는 마리아의 행동에 대해 매우 못마땅해하지. "아니, 그 비싼 향유를 왜 낭비하느냐? 그것을 팔아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훨씬 좋을텐데..."라고 말하고 있어. 사실 순간적으로 그의 발언이 매우 합리적이고 바른 소리를 한다고 생각이 되기도 해. 맞잖아. 그 향유의 값(300백 데나리온)이 그 당시 보통사람 일년치 봉급에 해당한다고 하니 오늘 날로 따지만 수천만원 하는 가치를 지닌 것인데 그것을 사람의 발에다 붓는데 사용한다? 아무리 예수님의 발이 귀하다손 치더라도 그래도 수십만원도 아니고 수천만원이나 들이는건 너무 과한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유다가 바른말한다고 생각되지. (참고로 1데나리온은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었대) 이것은 소위 서민적 이미지를 물씬 지닌 박원순 서울 시장이 어느 날 청담동 뷰티살롱에서 수천만원짜리 발마사지를 받았다라고 했을 때 보통 사람들이 받게될 충격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싶어. 그동안 재래식 시장에서 서민들과 함께 3천원 짜리 소머리 국밥 먹는 그의 이미지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당연히 받게될 충격이겠지. 따라서 예수님의 그러한 행동이 평소 그의 행동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에 유다에게는 분명코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을꺼야.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런 유다의 발언에 대해 이렇게 꼬집어서 얘기하지. "유다가 이 말을 한 것은 정말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친서민적인 마음 때문이 아니라 결국 표몰이와 포퓰리즘을 이용해먹는 정치인과 같은 도둑놈 심보에서 나온 말이다." 그 대표적인 이유로 유다가 일행의 공금을 맡고 있었는데 그것을 빼돌리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찾고 있어. 즉,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말하는 유다 본인은 정작 실제 제 삶 속에서는 전혀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배만 불리는데 급급하고 사리사욕에 눈먼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야.
따라서 결국, 위 말씀을 통해서 집중해서 생각해 볼 부분은 예수님이 얼마짜리 발마사지를 받았냐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과연 내 말과 행동 또는 삶이 얼마만큼 일치하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 즉,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나 스스로부터가 그 비판에 떳떳할 수 있는가, 그 비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를 꼬집어 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두번째, 마리아의 행동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유다와 정반대셔. 마리아가 그 비싼 향유를 자신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정성스레 닦아주는 행위를 매우 당연하고 바람직하게 여기기까지 하시는 것을 보게돼.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본인의 발을 그토록 귀하고 사랑스럽게 여겨서가 아니라 7절에 나와 있듯이, 마리아의 그 행위는 곧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애통해하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의 예표라는 점에서 받아들이고 계신 부분이지. 다시 말하면, 이것이 결단코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사치와 허영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의 왕되신 하나님, 예수님께서 자신을 온 우주의 왕으로 믿는 크리스챤으로부터 존귀와 찬양과 경배는 받는 대목이라고 이해돼. 우리 역시, 내가 가진 최고의 것으로 아니 모든 것으로 나의 구주되신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주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주님께서 나의 면전에 계시는데 당연히 그분께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어떻게 드리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가 살면서 당연히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필요가 있지만 그보다 더 우선시되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시인하는 것, 그리고 그 분께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최고의 예우를 다하는 것, 그것이 아닐까 싶어.
적용:
말과 행동(삶)이 일치되길 원합니다.
주님이 제 삶의 일순위가 되길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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