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연구, 2009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범주에는 모든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 동성애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는 목회적 차원에서 예수의 사랑을 실천해야 될 의무가 있다. 교회는 동성애자들을 무조건 배척해서는 안 되며 배타적 성윤리를 적용해 질책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상호적이고 서로에게 책임이 있고 헌신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유지해야 한다. 교회는 동성애자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으며 오해와 편견속에 괴로워하는 동성애자들의 돌봄의 목회가 필요하다.”

성 이해
1. 섹스sex : 신체적, 생리학적, 해부학적 기준에 의한 구분.
2. 젠더 gender : 문화의 영향을 받은 남녀의 행동차이를 뜻함. 사회적 기준. Identity.
3. 섹슈얼리티 sexuality : 넓은 뜻. 인간의 성에 관한 감정, 사상, 행동 등 모든 것과 관련되어 있는 복잡한 잠재능력이며, 사회와 상호관계를 맺는다.

구약의 성 이해
창세기와 아가서의 교훈은 남녀 간의 사랑과 그에 기초한 성적인 결합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소중한 삶의 원리임을 가르쳐 준다.
구약성서는 성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사랑의 완성으로서의 성적인 결합이라는 개인적인 차원과 종족 보존이라는 사회적인 차원 이외의 성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태도를 보인다. 처벌을 받아야 할 불법적인 성관계에는 다섯 가지 정도가 있다.
1. 성폭력 : 히위 족속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한 일(창34:1-2);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한 레위인의 첩을 폭행한 일(삿19:25-28);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베바를 범한 일; 다윗의 큰아들 암논이 배다른 누이인 다말을 겁탈한 일 등
2. 간통 : 남자가 유부녀나 약혼녀와 통간했을 때에는 모두를 돌려 쳐서 죽여야 했으며(레18:20;20:10;신22:22-24); 남자가 약혼하지 않은 처녀와 통간한 경우에는 그 처녀를 아내로 맞이해야만 했으나 아버지가 그에 반대할 수도 있었다(출22:16-17); 신명기 법전은 남자가 자신과 통간한 처녀를 반드시 아내로 맞이해야 한다는 규정을 둠으로써(신22:28-29) 여자의 정절에 대해서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지켜야 함을 강조한다.
3. 근친상간incest : 구약성서는 근친상간을 매우 엄하게 금하여 돌로 쳐서 죽이는 형벌을 부과 한다(레18:6-18; 20:11-12,17-21; 신27:20,20-23)
4. 수간bestiality(짐승과 성관계) : 남자(출21:19;레20:15;신27:21) 뿐만 아니라 여자(레18:23;20:16)에 대해서도 엄하게 금지한다.
5. 동성과의 성관계homosexual intercourse : 소돔과 고모라 지역의 사람들(창19:5); 베냐민 지파 사람들(삿19:22); 동성애 행위 역시 죽음의 형벌을 면치 못했다(레18:22;20:13)
성은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결혼과 가정이라는 규범적인 질서를 통해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며, 사랑에 기초한 성관계는 생육과 번성의 복을 이루어 감으로써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건강한 공동체가 자라가고 성장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신약의 성윤리
신약에 나타난 성 윤리의 가장 명확한 점은 결혼이 하나님의 창조질서 가운데 있으며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성문제에 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혼 문제와 관련해서는 지적한 것을 볼 수 있다.(막10:1-9) 당시 예수의 여자에 대한 태도는 당시 여자의 사회적 지위와 편견에 비추어 볼 때 가히 충격적인 것으로서 장차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인간적 편견과 불평등이 제거된 곳이요,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회복된 곳임을 그의 삶으로 보여준 것이다.
사도바울은 성을 육체적인 것 뿐만 아니라 전 인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고전 6:9-10) 복음서와 바울서신에는 음행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음행이란 “모든 종류의 불법적 성관계”를 뜻한다.(혼외정사, 수간, 동성애 등)
예수님은 음행을 단지 육체적인 죄로만 규정하지 않으셨다.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성적으로 방종한 생각까지도 음행이라고 부르셨으며, 이러한 음란한 생각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하셨다.(마5:28; 마15:18) 당시 유대교에서는 육체적 정결함이 구원과 직결되어 있는 중요한 문제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예수님의 말씀은 마음까지도 정결할 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한쪽 눈이나 손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음란한 생각을 버려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마5:29)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엡5:5)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 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6:9-10)
바울이 위처럼 음행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는 것은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고전6:18) 여기서 몸이란 그 사람 자체, 통전적 자아를 뜻한다. 따라서 음행은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을 무효화 시킨다.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죄인들의 죄를 씻기고 의롭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훼손시킨다.

동성애의 개념
동성애 : 존재의 문제
동성연애 : 행위의 문제

동성애의 원인
1. 정신분석학적 모델
‘동성애는 분명히 이득도 없는 것이지만 부끄러워할 만한 것도 아니며, 또 타락도 아니므로 질병으로 분류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성적 발달의 정지에 의해서 성적 기능이 변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고대나 중세에도 사회적으로 존경할 만한 수많은 사람들도 게이였는데, 플라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러므로 동성애를 범죄나 잔학행위로 보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입니다. 당신이 나를 믿지 못하겠으면, 엘리스Havelock Ellis의 책을 읽어 보십시오.’ – 프로이트
프로이트는 모든 사람이 원래 양성적 존재로 태어나며, 자라는 도중에 성적 발달이 정지하게 되면 게이가 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동성애 그 자체를 치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성인이 동성애가 된 근본적인 원인은 아동기 당시의 성적 발달에 기인한 것으로 보았다. 즉, 아이가 동성애자로 발달하는 것은 가족의 상호작용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며,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클라인Klein – 프로이트와 다름. 아이가 어머니를 두려워한 감정 때문에 게이가 된다고 봄. 젖먹이 시절부터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있으며, 이러한 분노에 대해 어머니가 자신을 처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아버지를 동일시하게 된다는 설명. 아동은 자신의 남근을 보면서 만족감이나 우월감을 얻지만, 남근이 없는 어머니의 신체를 보면 두려움을 느낀다.
버글러Bergler – 어머니로부터 수유 받는 시기에 너무 만족이 컸기 때문에 남성에게 집착한다고 해석. 이 경우, 다른 남성들의 성기는 어머니의 젖을 상징한다고 봄.
비버 – 동성애를 이성애에 대한 공포가 내재된 현상으로 파악. 동성애의 원인은 아동기의 갈등에서 야기된 무의식적 불안이며, 이 불안을 해소시키는 것이 동성애의 치료라고 보았다.
찰스 소키라이즈Charles Socarides – 여성이 아동기 때 아버지로부터 받은 거부감 또는 실망의 두려움 때문에 남성을 회피했으며, 그 결과 레즈비언이 되었다고 봄. 이 경우, 어린 시절 이상적이던 어머니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다른 여성에게 전가되는 것.

2. 학습 이론적 모델
킨제이 학파 – 동성애를 하나의 성적 지향이라기보다는 동성을 선택하는 기호로 봄. 그 기호의 형성은 조건형성conditioning의 역할로 해석함. 즉, 동성과의 만족스러웠던 경험이나 이성과의 불만족스러웠던 경험이 어느 결정적인 시기에 강화reinforcement되어 나타난 현상. 또한, 직접경험 이외에도 간접경험에 의해서도 개인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사회학습이론으로 동성애를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의 예들은 어린 시절 의복의 착용이나 장난감의 선택, 또는 놀이방법의 선정에서 직접적으로 강화 받았다거나, 직접적 강화가 없는 상태에서 동료나 성인의 행동이 강화 받는 것을 관찰했다거나,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서 우연히 보상의 효과를 얻었다거나 등이다.
대부분의 행동주의 이론가들은 동성애를 잘못된 학습의 결과이므로 정상이 아니라고 간주했다. 따라서 행동주의식 원리에 의하여 치료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 원리는 조건형성을 응용하는 것으로서, 예를 들면, 동성을 선호하는 반응을 전기충격과 같은 혐오자극과 결합하면 동성을 기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성애적 행위에 대한 경험이 없었던 중년여성이 이혼이나 강간 등의 고통스러운 경험 때문에 의식적으로 레즈비언이 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경험에 의한 동성애의 발달의 또다른 예는 교도소, 군대, 기숙사, 승방, 수도원 등과 같이 동성들끼리 장기간 생활하는 환경이다. 이곳에서는 동성애적 성적 지향을 지닌 자들이 아니더라도 동성 간의 접촉으로 성욕을 해소하려는 경우가 발생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교도소 수감자 2,500명의 남성 중에서 65%가 수감생활 중에 성관계를 경험했다고 보고한다. 응답자의 38.5%는 타인의 항문에 자신의 남근을 삽입한 경험이 있고, 20.5%는 타인으로부터 항문성교를 당한 경험만을 보고했으며, 나머지는 구강섹스만을 보고했다.
벨Bell – 성적 지향은 성적 경험보다 정신적 사고 및 정서에 의해서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하이트Hite – 조사 결과, 남성들의 43%가 사춘기 시절 다른 남성들에게 자위행위를 해주거나 다른 남성이 자신에게 자위행위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남성의 1/3은 상대방의 성기를 입으로 빨아준 경험도 있다고 하였다.

3. 생물학적 모델
a. 세포유전학
쌍생아 연구 – 표집집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객관적 자료로는 미흡하다는 주장.
게이들마다 서로 다른 원인에 의해서 동성애 지향이 발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b. 내분비계
태아기 동안 호르몬의 영향으로 중추신경계의 구조와 기능에 변화가 생기며, 그 결과로 남성이 여성적인 또는 여성이 남성적인 성적 지향을 보이게 된다고 가정.
어느 연구 결과, 게이 남성들이 이성애자인 남성보다 남성호르몬의 수준이 낮거나 기형의 정자세포가 많으며, 레즈비언들이 이성애자 여성보다 남성호르몬의 수준이 더 높음.
한편으로는, 호르몬 수준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음.
오히려 호르몬 수준의 차이가 동성애를 결정하는 요인이라기 보다는 성행동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 결과 그러한 차이를 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c. 신경해부학
시몬 레베이Simon Levay – 성행동과 관계가 깊다고 알려진 시상하부hypothalamus에서 게이와 이성애자 간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였음.

동성애 논의(찬-반)
찬> 성인들 사이에 성적 강제가 존재할 수 없다. 두 사람이 성적으로 자유롭게 하는 성적 행위는, 그들 나름대로 도덕에 입각한 행위이므로 자유로운 성적 표현을 금지 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침해다.
반> 성인들이 동성애를 하는데 서로 동의 한다고 해서 동성애가 정당화 될 수 없다. 동성애는 근본적으로 도덕적 결함을 안고 있다.
찬> 헌법에 명시된 사생활 권을 침해할 수 없다.
반> 사생활 권은 부도덕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찬> 성적 성향은 유전된다.
반> 성적 성향이 유전된다는 확실한 과학적 증거는 없다. 오히려 학습 받은 행동이라는 증거만 있을 뿐이다. 더욱이 만약 폭음이나 폭력을 유전적으로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의 사용은 제지를 당하거나 비판을 받는다.
찬> 도덕은 고대 이래로 역사적으로 변화를 겪어왔다.
반> 도덕은 변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도덕 원리들은 절대 변함 없으며 다만, 도덕 원리들에 대한 인간의 의식과 실천 방법이다.
찬> 성교는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방편.
반> 인간은 성교를 통해서만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두 가지 대립의 근본적 원인은 동성애를 선으로 보느냐, 악으로 보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보여진다.

동성애에 대한 성서적 논쟁
1. 소돔과 고모라
찬> 베일리
첫째, 언어학적 입장 – “상관하리라”는 요구를 “성적 교섭”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그 이유는 히브리아에 yadha라는 단어는 943회가 나오지만 그중에 열 번 정도만 육체적 접촉을 의미하며 그 역시 이성적인 관계를 이야기 한다. 즉, ‘알다’는 ‘낫선 사람들에 대해 자세히 알자’로 해석되어야 한다.
둘째, 구약성서 나머지 부분에 소돔의 범죄의 성격이 동성애적이었다는 언급이 없다. 소돔에 대한 죄에 대해 이사야는 위선과 사회적 불의; 예레미야는 간통사기, 일반적 사악함; 에스겔은 교만, 탐욕, 가난한자에 대한 무관심; 예수님 또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들의 죄가 동성애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소돔과 고모라의 유사사건인 기브아 사건에서도 기브아의 죄도 동성애적 죄가 아닌 환대 법을 어긴 것.
반> 소돔 이라는 지명 곧 ‘소도미’는 ‘남색’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
폴 퍼니쉬 – 창세기 4장의 아담과 하와가 한 자리에 들어 임신을 하는 장면에서 ‘yadha’가 쓰인다. 따라서 창세기 4장에서는 하나님이 맺어주신 합법적인 혼인 안에서 쓰였기에 문제가 없지만 창세기 19장에서는 부부간이 아닌 동성애적 강간의 관계로 쓰였기에 부정하고 추악한 행위 였다는 것. 또한 여기에서 나오는 히브리어 ‘알다’는 구약에 943회 나오는데 그 중 겨우 열 번만 육체적 접촉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중에 여섯 번이 창세기에 쓰이며 그중에 한 번이 바로 소돔의 이야기에 나온다. 또한 동성애자들은 소돔의 죄가 동성애가 아니라 범상한 일반 죄라고 주장하나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소돔 사람들이 성적으로 타락했다느 증거가 분명해진다. 에스겔 16:49에 언급된 이기심은 동성연애를 배재하지 않는다. 또한 에스겔 16:50에 쓰인 ‘가증하다’라는 단어는 레위기 18:22에서 동성애의 죄에 대해 설명할 때 쓰인 말과 동일하다. 이는 yadha가 성적인 관계를 암시했으며 중세에 소돔에 대한 상징 주의적 사용은 동성애적 행위로부터 남성 매춘 행위 모두를 포함한 죄와 행위로 넓어진다.
2. 레위기 사본
찬> 레위기의 구절에 대해 동성애자들은 돼지고기와 새우 먹는 관습과 함께 비난 받았지만 그러나 이와 같은 제사법은 이미 철폐 되어 버렸기 때문에 율법이 효력을 여전히 발휘한다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베일리 – 레위기의 율법은 모두 남자 사이의 통상적 동성연애 행위와 관련되어 있고 의식이나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다른 행동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여 레위기의 구절들이 모든 동성애를 금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이해가 잘 되지 않음)
이스라엘은 거룩한 성전에서 매춘 행위를 하는 동방의 다른 여러 국가들과는 구별 되었다. 주변 국가들의 동성애는 주로 남성들의 동성애를 말하고 있는데 성전에서의 매춘 행위의 행태를 갖고 있었으나 법에서는 이것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런 의도는 동성애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 사이의 관습이었던 성전 매춘 행위를 비판한 것이다. (이것도 무슨 말인지?)
반> 레위기에 기록된 동성애에 대한 비난은(레18:22;20:13) 단순한 동성애와 우상숭배 행위의 금지 그 이상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성의 신성함을 없애는 것이나 우상숭배 모두를 담고 있다. 특별히 추악한 것으로서 동성애에 대한 금지는 동성애적 행위가 창조의 신성성 그 자체를 파괴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본다.
레위기 사본에 대한 정통적인 해석은 동성애적 행위가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며 신적 의지를 범하는 것이라고 본다.
또한, 동성애적 행위를 금지하느 법은 단순한 우상숭배 예식이나 문화 때문이 아니고 신학적이며 계시되어진 것이라 한다. 레위기의 동성애 금지 조항은 철폐된 율법이 아니라 의식적이며 도덕적인 것이다.
여기서 유념할 것은 동성애 옹호론자들의 주장에 의거해 추론하면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죄들은 다 죄가 아닐 수 없다는 위험한 사실이다. 동성연애가 죄로 인식하지 못하고 행했던 이방인들에 대해 하나님은 그들을 비난하고 심판을 내리셨다. 또한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구약에 기록된 식사에 관한 율법을 변경 시켰지만(마7:18;행10:12) 동성애를 금지하는 법은 신약에서도 반복 되고 있다. (? 성경을 찾아 봤는데 이해가 되지 않음.)

3. 퇴폐적 이방사회
반>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퇴폐적 이방 사회에 대한 묘사를 통해 동성애가 부자연스러운 창조의 역리라 말함.
찬> 바울이 이야기한 역리라는 것이 사회학적인 개념으로 쓰인 것이므로 이성간의 사랑도 동성애자들에게는 역리로 보인다는 것. 여기서 로마서의 이 구절은 동성애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혀용하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각 개인은 이성간의 사랑이든 동성 간의 사랑이든, 자기 자신의 사회학적인 지향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동성 간의 관계가 자연스러운 관계로 본다면 동성애는 정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반> 로마서에서 말하는 ‘본성과 모순되다’는 말은 사회학적인 본성이 아니라 본질적인 본성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이성과의 사랑이 동성애자들의 본성과 모순된다는 것을 근거로 동성연애를 정당화 하는데 이용할 수가 없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창조에서 생물학적인 바탕과 ‘한 몸을 이루라’는 말에는 육체적인 결혼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에 두고 있다.
로마서의 전체적 논증의 초점은 죄스런 인간의 행위이다. 사도 바울은 부끄러운 욕정에 대한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단언한다. 이 경우, 부끄러운 욕정은 비정상적 또는 동성애적 행위와 연관되어 있다.

4. 두 가지 죄인 목록 (고전6:9-10; 딤전1:8-11)
바울의 두 가지 죄인 목록에 쓰인 동성애를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는 malakoi와 arsenokoitai이다. 찬> 베일리를 포함한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여기에 착안해 바울이 말하는 동성애는 ‘성적 도착자’가 아니라 동성애 행위를 직접 행하는 자들이므로 동성애 자체에 대해 비난하지 않았다고 본다. (무슨말인지?)
또한, 존 맥네일을 비롯한 새로운 해석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malakoi와 arsenokoitai의 문학적 의미는 부드러운이며 수동적 동성애 보다는 사내답지 못한, 성격상의 약함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고전6:9의 경고는 어른과 아이의 동성애인 패디래스티pederasty를 겨냥하고 있다고 한다. 왜냐면, 당시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이 패더래스티가 성행하고 있었기 때문. 따라서 새로운 해석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남성 매춘과 패더래스티는 이미 있었기에 고린도에서 죄의 목록에 포함된 것이지, 일반적으로 동성애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반> 고전6:9-10과 딤전1:8-11에 있는 죄의 목록은 신학적이고 설교적인 규범으로 본다. 따라서 전통적인 해석은 성적 부도덕성으로부터의 동성애를 언급하는 이 단락들의 중요성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죄의 목록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바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악한 자에게 경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5. 최근의 논의들
최근까지 동성애 행위에 반대하는 전통적인 성서의 근거였던 여섯 부분(창19:1-11; 레18:22; 20:13; 롬1:18-32; 고전6:9; 딤전1:8-11)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어져 왔다.
a. 성서 비평학이 성서해석에 사용되면서 동성애를 언급하는 위의 여섯 부분들도 새롭게 해석되기 시작하였고, 따라서 하나의 목소리를 담은 신학적 해석은 더 이상 말해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b. 새로운 관점에서 동성애를 보는 학자들은 성서를 해석할 때 성서가 쓰였을 때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면서 성서연구에 임해야 하며, 진리는 성서시대의 배경을 넘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열린 마음으로 성서를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c. 성서에는 또 다른 성에 대한 규범이나 금지사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와 오늘날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오늘날 더 이상 규범이나 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도 많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월경하는 여자는 부정하다 했는데 오늘날에 이것은 생리학적 문제지 불경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여기서 부정하다는 의미를 역사적 배경과 맥락에 따라 이해해본다면 어떻게 해석되는지도 역으로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여성은 남성의 소유권에 속한다고 구약은 말하지만, 오늘날은 상호 인격적이고 존경심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신약에서 예수님이 바로 그것을 얘기하고 있지 않는가?) 그밖에도 구약시대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했고, 결혼한 형제 중에서 자식이 없이 죽으면 과부된 여인은 다른 형제와 결혼하여 죽은 형제를 위한 씨받이가 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하는 경우 가정파괴범이 될 것이라는 점을 들어 동성애에 대한 성서의 언급도 역시 오늘날 우리에게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그러한 관점이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들조차, 예컨대,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도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따라서 당시 문화의 영향을 받은 성서의 성윤리에 대한 구절들은 오늘날 동성애자들의 상황에 문자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고 보며,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과 같이 인간행동을 취급하는 경험과학의 자료들이 동성애 삶의 스타일과 같은 구체적 상황에 대한 윤리규범을 만드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해석의 입장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더욱이 성경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하고, 자신이 주장하려는 바에 끼워맞추는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옹호론자들의 논지 중에서 뭐 하나 뚜렷하게 마음에 와 닿는게 없다. 쉽게 설명을 하든지... 저자는 과연 제대로 알고 쓴 것인가 심히 의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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