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포럼 이야기Finding God Beyond Harvard, Kelly Monroe

질문 :
"어느 것이든 그것이 진리임을 우리가 어덯게 아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인간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믿음과 과학은 서로 부합하는가? 그렇다면 DNA는 어떻게 되는가? 빅뱅은? 카오스는? 양자론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면 왜 고난이 있는가?"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현실에서 희망은 있는가?"
"내 몸 가족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왜들 난리인가?" - 참된 친밀감의 결핍에서 오는 생각이다. 그것에 목마른 세상은 구원을 갈구하듯 섹스에 탐닉한다. 하지만 친밀감이 결여된 섹스는 겉만 번지르르한 거짓 소망일 뿐이다.
"왜 범죄가 일어나는가?"
"나는 어떻게 덕을 지닐 수 있는가?"
"왜 정의가 실종되었는가?"
"나는 어떻게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가?"
"왜 사람들은 절망하는가?"
"나는 무엇에 소망을 두며, 그 까닭은 무엇인가?"
"무엇이 소중하며, 그 까닭은 무엇인가? 아무렴 어떠냐는 정신은 어떠한가?"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가?"
"나는 어떻게 아름다워질 수 있는가?"
"무엇이 진실인지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우리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멋스러움? 명성? 부? 섹스? 과거의 상처와 기대감의 상실? 그도 아니면 우리를 돕는 불변의 무언가가 있는가?"
"사랑은 어떻게 지속되는가?" - 이면에는 상한 마음이 숨어있다. 대학생 중 40퍼센트는 결손가정에서 자랐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색함을 느낀다. 그들은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친밀한 관계가 깨지지 않을까 마음 졸인다.
"종교란 다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 "하나님의 성품, 우주론과 우주의 의미, 인간성, 인간의 가치, 실재의 본질, 윤리, 선한 삶, 자비와 친절, 성적 관심, 고통, 기쁨, 소망, 구원 그리고 천국이나 지옥에서 맞게 될 우리의 영원한 운명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제외하면 다를바 없지요." - 재커라이어스 박사; '산에 오르는 길은 여럿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그 말에는 우리가 산에 오를 능력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인간의 불완전과 죽음의 필연성을 고려할 때, 우리는 오직 한 사람이 정상에서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닦았음을 알게 된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지구는 어떻게 됩니까?" - 우리가 지구를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 몸을 바라보는 시각과 같다. 지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선물이며 우리는 그 선물을 온전히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청지기다. 우리가 청지기직을 수행할지 말지는 우리가 하나님과 인류 그리고 창조 세계를 사랑하는지 않는지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인간의 필요를 희생하면서까지 자연을 숭배하지 않으며,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자연을 무차별 착취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분별력과 청지기직 윤리를 통해 우리는 지구를 돌보는 일이 우리의 이웃, 가난한 자들, 어린아이들 그리고 다가올 세대를 돌보는 것과 같음을 깨닫는다.
"새로운 과학, 생명공학, 건강 관리는 어떻게 되는가?" - 과학과 공학에서 인간이 일궈낸 성과는 인류의 타락으로 인한 몇몇 결과들, 예컨대 질병과 영양실조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적잖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인간 복제, 연구 목적을 위한 배아 사용, 나노 기술의 사용과 같은 문제와 관련해 기로에 서 있다(답변제시부족). 인간과 기술이 결합되어 기술인간techno sapiens으로 변형되는 것과 유사한 그 무엇, 즉 인간에 대한 범주 이동이 가속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족한 답변) : 의사와 과학자들은 연구 과정에서 인간성을 훼손하거나 생명체를 죽이지 않고도 병을 치유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을 속속 밝혀 내고 있다. 창세기의 첫 두장에서는 건강을 부여하는 여러 조건이 기술되어 있다. 식물학자들은 새로 발견한 식물에서 치유 성분들을 찾아낸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책임자이자 신실한 그리스도인인 프랜스스 콜린스는 한 발 물러설 때와 최첨단 연구에 착수해야 할 때를 슬기롭게 구별할 줄 안다.
"악의 문제" -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악이 이 세상에 창궐하도록 내버려 두실 수 있을까? 악의 존재는 하나님의 부재, 무능력 혹은 무관심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닐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도덕적 재앙뿐 아니라 자연 재앙 또한 끊이지 않는다. 성경은 인간에 대해, 궤도를 이탈한 푸른 행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 자녀들의 구속을 바라며 신음하고 있다고 말한다. 복음의 하나님은 그저 악에 대해 말하거나 악을 미워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악의 세계로 침투해 그것을 쓰러뜨리신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이 땅에서 순교하더라도 장차 승리할 것임을 알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지옥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참된 이야기real story를 알면 이 세상 한가운데서 지혜로우면서도 용기있게 살 수 있다(cf. 홍사종,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 (답볍)하나님이 악을 미워하시면서도 그것을 허용하시는 까닭은, 악을 마지막 수단으로 삼아 악의 의도를 선으로 바꾸시기 위해서다. 그분은 자신의 선한 뜻을 위해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방식으로 악을 사용하신다.
"문명의 충돌은 어떻게 되는가?" - 기독교는 하나님의 거룩뿐 아니라 우리를 향한 그분의 자비 또한 강조한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어 우리 죄와 허물을 친히 짊어지게 하심으로써 악과 보복의 악순환이라는 고리를 끊으셨다. (답변)따라서 기독교인들은 기도, 자기희생, 은혜와 진리, 슬기로운 자제와 대화가 필요하다.
"성과 동성애" - 우리의 몸은 선물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가 이용당하거나 착취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다가 차 버리거나 혹은 차이는 존재가 되도록 지음받지 않았다. 인체 해부는 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인체를 해부해 보면 매우 분명한 의도design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퍼즐 조각들이 서로 딱 들어맞듯이 말이다. 당연히 그 의도를 거듭 훼손하다 보면 질병과 혼란이 생기지만 존중하면 건강이 유지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몸을 올바로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보다 차원 높은 진리가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을까? 참된 이야기를 알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간혹 든다. 우리에게는 사소한 이야기들, 종종 놀랍기까지 한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많지만 큰 이야기, 우리 모두가 속해 있다고 느끼는 위대한 이야기는 없다고 세상은 말한다. 심오한 연관성을 지니는 진리는 찾아볼 수 없고 우리의 부서지고 주관적인 진리와 영성만이 난무한다. 서사시는 없고 신화만 있을 뿐이다. 이 세상에 와서 온갖 수모를 당하신 창조주이자 연인이신 하나님은 간 데 없고 우리 자신의 권위만 있을 뿐이다. 세상에 침투해 실체를 드러내는 초월적 진리가 실종되자 우리는 제멋대로 상상하고 절망하며 권력 다툼에 몰두한다. 진리가 사라진 세상에서 막후 인물들이 기세를 떨친다. 나름의 진리를 창출하는 그들과 맞설 만한 도덕적 기백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진리가 실종된 세상은 재앙을 초래한다. 우리의 사소한 개인적 진리는 영향력이 크지 않다. 히틀러의 진리는 유대인의 진리가 아니었다. 자살 특공대의 진리는 희생자의 진리가 아니다. 당신 이웃의 진리는 당신의 진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물질주의/자연주의 - 정신, 기억, 양심, 상상력, 빅뱅 이전의 '순간'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세속 인본주의 - 객관적인 척하는 그 나름의 종교(믿음을 견지하는 헌신)이며, 기독교에 비해 인간의 가치를 설명하는 기반이 약한 사회적 구성 개념이다. 인본주의자들의 삶이엉망진창인 점을 감안할 때 이 사조가 구속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자기 파멸적인 아이러니다.
소비주의 - 지극히 미국적이지만 그렇게 인간적이지는 않다. 미디어라는 매트릭스에 플러그가 꽂힌 상태다. 하지만 우리가 지음받은 것은 생각하고, 창조하며, 자유로우며, 욕망뿐 아니라 영혼도 갖기 위해서다.
동양의 신비주의 - 고난을 부인하기란 고난과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쉬운 일이다. 고통은 환상이 아니다. 나는 환생과 인과응보의 윤회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자신이 없다. 증거 자료는 실제 세계를 가리키며 나는 그 안에 있다.
상대주의 - 지겹도록 상대화할 수 있다. 해체주의자들은 모조리 해체될 것이다. '진리는 없다'는 구호조차 그 자체로 하나의 진리 주장이다.

과학과 예술은 성경 이야기가 사실임을 드러낸다. 천체 물리학은 비물질적 제1원인의 시작과 필연성을 드러낸다. 생화학과 DNA는 암호화된 지시 '언어', 곧 인간의 몸을 입은 로고스logos를 드러낸다. 고고학과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사건, 인물과 장소에 대한 목격자들의 증언이 사실임을 드러낸다.

천체물리학자 휴 로스는 성경이 다른 경전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 곧 간결하고 직접적이며 구체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성경의 저자는 지구상에 생명체가 창조될 때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정확히 기술했을 뿐 아니라, 그 사건들을 과학적으로 올바른 순서로 배열했으며, 지구의 최초 상태가 어떤지를 적절히 밝혔습니다. 나는 창세기뿐 아니라 이사야와 시편을 읽으면서 우주가 어떻게 팽창을 계속하는지, 시공간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우주가 어떻게 나이를 먹고 기온이 내려가는지에 대해 성경이 정확히 기술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과학자들은 20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런 개념들을 이해할 수 있었지요. 나는 성경에서 어떤 모순도 일으키지 않는 진술들이 300개가 넘는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과학자인 나는 그러한 정확도가 가능한지 따져보았습니다. 그 결과 진술들이 거짓일 가능성은 1/100(x300승) 미만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할 수 있을까요? 동일한 창조주가 성경과 우주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Q1> 기도로 혹은 신앙으로 수많으 질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받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심리적 원인에 의해 발병된 질병과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의 증상이 유사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또는, 심리연구결과와 같이, 몸과 마음은 이분법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호유기적인 관계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질병과 심리는 상당한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Q2> 예수님은 모든 사회적 문화적 신분 질서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이 세상의 전도된 가치를 바로잡으신다?
: 예수님은 권위자에 대한 권한에 대해 옹호하지 않으셨는가?

"데이터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세상에서 정말로 중요한 능력은, 예술성, 감정이입, 큰 그림 보기, 초월성 추구하기와 같은 뇌의 우반구가 담당하는 특정 분야에 영적으로 보다 가까워지는 것이다." Daniel Pink, '우뇌의 복수', "Wired"

대학university의 의미 : 다양성 안의 일치unity in diversity

나는 1960년대 심리학에 불어 닥친 새로운 자유의 바람이 어떻게 풍성한 삶과 자유를 약속했는지를 말해주었다. 우리 아버지가 적을 두고 있었던 심리학과에서 다루는 다양한 결혼 형태처럼 부모님의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다. 두 분의 결혼 생활은 1960년대와 1970년대 문화의 거센 도전 앞에 무너져 내렸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오빠들은 멀리 떨어진 대학으로 진학했다. 나는 시계를 거꾸로 돌려 우리 식구 모두가 어딘가에 있는 농장으로 이사했으면 했다. 우리 가족은 다섯 식구였다가 엄마와 나, 이렇게 두 식구로 줄어들었다. 내가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부모님은 인생에 환멸을 느꼈다. 강의실에서의 가르침은 실제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대학이 만들어 낸 문화는 아버지에게도, 우리에게도 진실을 말해 주지 않았다. 우리는 수업료를 내고 그 사실을 터득했다. 우리가 마시는 샘은 바닥을 드러냈다.

"여러분 중에는 마음의 상처나 분노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겠지요. 또한 소속감을 느끼고, 애쓰지 않아도 인정받으며, 서로 보살핌을 주고받으며, 서로 피난처가 되어 주는 곳을 애타게 찾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이 성적 노리개로, 정복 대상으로 전락하는게 현실 아닙니까? 우리는 아름다움과 지위라는 우상을 돈으로 사들입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기도 하고 서로를 위해서 그러기도 합니다. 옷을 입고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이따금 저는 우리가 섹스에 탐닉하는 문화의 희생자라고 느낍니다. 제가 아는 몇몇 교수님들은 포르노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도 자신을 여성 해방 운동가로 여기더군요. 하지만 남성들 역시 인간성을 말살당하고, 오로지 성공만을 위해 살며, 실적과 출세와 안전과 소득을 위한 일벌레가 되는게 현실입니다.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여러분이 선택을 제대로 하려면, 인생을 참되게 살려면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알다시피 우리는 사람들과 친밀하면서도 참된 관계를 맺고 싶어 하죠. 그리고 우리 마음 속에 그러한 갈망을 심어 놓으신 하나님과도 말입니다."

삶을 살아내는 것과 믿음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가? 기독교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논쟁할 때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곁들이게 한다면 기꺼이 나설 과학자가 몇이나 될까?
: 즉, 지식과 삶(믿음)은 별개라는 이야기다. 머리로 아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절대적 신념(믿음)이 필요하다.

"내가 만난 것은 죽은 종교가 아닌 살아있는 어떤 사람이었습니다." - 캘리 먼로의 회심 이야기(10대)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얼마 전 취임한 하버드 총장에게 '요즘 대학생들의 최대 고민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업습니다. 총장은 '공허'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우울증, 성적 혼란, 성병, 마약 사용, 폭음, 포르노, 나아가 자살이 급증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위대한 우리 대학들이 어쩌다 공허한 곳이 되었을까요?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하버드대, 예일대, 다트머스대, 프린스턴대, 노스웨스턴대, 그 외 수백 개 대학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의미 있는 참된 삶을 추구하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한 삶을 발견하여 사랑으로 가득한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게 하려는 취지 아래 설립되었습니다. 하버드의 비전과 교훈은 원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In Christi Cloriam였는데, 나중에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한 진리'Veritas: Christo et Ecclesiae로 바뀌었습니다. 하버드 설립자들에게 진리(베리타스)는 추상적인 개념도 티셔츠와 학위증에 새길 번지르르한 말도 아니었습니다. 진리는 한 사람, 곧 생명을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하버드 칼리지 정관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삶과 공부의 목적인 하나님과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요17:3) 것이기에 그리스도를 모든 건전한 지식과 학문의 유일한 토대로 삼아... . 그분께 지혜를 구하도록 모든 학생들에게 주지시켜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마침내 교훈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학생들은 진리 추구에 헌신하는 대학에 들어오라는 초대를 받지만 막상 와 보면 추구할 만한 참된 진리가 없다는데 실망하곤 합니다. 하버드 야드에서 개최된 졸업식에서 한 학생은 이렇게 빈정거렸습니다. '특정 가치관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은 이단이며, 자신의 도덕적 판단보다 더 건전한 도덕적 판단이 있다고 믿는 것은 환상이라고 대학은 가르친다. 우리 시대의 자유란, 어떤 가치관이든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지 않는 한 무엇을 믿든 전혀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자유다.'"

UC버클리는 기독교 교육의 이상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로 설립되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대의 모든 캠퍼스는 창세기 1장의 "빛이 있으라"를 교훈으로 삼았다.

정욕, 탐욕, 게으름, 분노 혹은 질투는 교만에서 싹튼다. 그러나 겸손의 열매들, 곧 거룩한 슬픔, 정직한 고백, 용서, 눈물 그리고 그에 뒤이은 웃음과 화해는 아름다움의 빛을 발한다. 다양한 문화 안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더불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비결을 우리는 복음에서 발견한다.

폭력과 불의의 이미지, 정절 없는섹스, 그리고 교수들의 냉소주의와 모호한 입장에 당혹감을 느끼는 - 아직은 삶의 의욕을 잃을 정도로 타격받지는 않았지만 - 다수의 학생들은 지혜에 대해, 나아가 진리에 대해 거듭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지속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 그들은 알고 싶어 한다. 우리 문화에 넌더리가 난 많은 이들이 세속에 물든 이 세상에 반기를 들고 있다. 그들은 재 속에서 다시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고 있다. 그들은 세상을 선한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우리가 복음의 렌즈를 통해 볼 때 무엇이 새롭게 인식되는가?
사람들이 더욱 소중한 존재로 다가온다. 우리의 정신과 마음은 넓어진다. 사랑은 우리를 보다 관대하고, 창의적이며, 포용력이 크 사람으로 자연스레 변모시킨다. 우리의 가족 개념은 민족성, 능력, 사회경제적 계층이 다양한 사람들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대된다. 세상은 신비를 탐구하고, 모험을 시도하며, 나아가 사랑과 정의가 충만한 그분의 왕국을 확대해야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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