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김남준

안식년
목회자나 신학교 선생들이 여러 해 사역하고 난 후에 자신을 돌아보고 재충전하거나,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마치 안식년이 성경의 요구나 되는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곡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 격변하는 기대 속에서 진리를 파수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았던 종교 개혁자들의 생애를 보십시오. 순간순간 순교의 위협을 무릅쓰고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박해를 견뎌야 했던 특별한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보십시오. 죽어 가는 영혼들에 대한 불타는 연민 때문에 구령의 열정을 가슴에 안고 가까운 고장과 먼 나라를 누볐던 각성의 시대의 복음 전도자들의 생애를 보십시오. 그들은 촌음을 아끼며 다투듯이 일생을 살았습니다. 오락을 경멸하고 휴식을 죄송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들 안에 있는 불꽃처럼 타오르며 살아야 할 거룩한 열망들이 그들로 하여금 안일한 삶을 살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섬겨야 할 일이 산처럼 쌓였는데 휴식을 취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휴식이란 오직 죽음을 통해서나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건강 자체가 아닙니다. 건강은 우리 몸을 위하여 있고, 우리의 몸은 복음 사역을 위하여 있고, 우리의 복음 사역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평생 건강을 보존하느냐, 해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보존이며 해침이냐입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영적인 인물들로서 한 시대를 불꽃처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단명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18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선교사였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로버트 맥체인Robert M. M'Cheyne은 스물아홉 살에 죽었고, 죠셉 얼라인Joseph Alleine은 삼십대 초반에 운명하였으며, 마틴 루터Martin Luther조지 윗필드George Whitefield존 칼빈John Calvin, 찰스 스펄젼Charles H. Spurgeon은 모두 오십대 초반이나 중반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인 줄 아십니까? 저의 판단으로는, 그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에는 남보다 지나치게 힘을 소진한 과로가 남보다 이른 죽음의 원인이었습니다.

*일화(휴식)
칼빈이, 당시 제네바에서의 종교개혁을 주도하던 파렐Farel와의 첫 만남 앞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그 곳의 개혁 운동에 숙명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자신의 건강 때문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구실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면서 제네바의 종교개혁에 동참하자는 자신의 요구를 계속해서 거절하는 칼빈에게 파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는데, 당신은 진심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입니까? 당신은 자신의 휴식과 개인적인 유익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당신이 무시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축복이 거기에 없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휴식을 저주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휴식에 하나님의 저주가 있기를... ."
파렐의 이 추상 같은 발언 앞에서 칼빈은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이 떨려 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의심할 수 없는 어떤 명료함이 그의 어두운 마음에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지금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파렐의 선언 앞에서 보이지 아니하는 지존자의 임재를 느꼈고 하나님의 손이 그의 말을 통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칼빈 자신의 머리 위에 머무는 것을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빛이 아니요 빛이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목회자로서의 표증을 드러내 보여 주고 그 능란한 설교가 하늘의 웅장한 진리를 증거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빛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빛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하여 온 사람입니다. "그(세례 요한)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요1:8)


*일화(정욕으로부터의 해방)
길선주 목사님
옛날에 한국 교회 역사에서 비교적 초기 시절에 활동하던 부흥사들 중에는 부흥회를 다니면서 자신의 잔심부름도 하고 수발도 들어 주는 여신도를 동행하게 하는 좋지 못한 유행이 있었습니다. 평양에서 기생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그들 중 수장격이 되는 여인이 수하의 어린 기생들에게 말했습니다. "듣자 하니 소문에 길선주 목사라는 자가 있어서 뛰어난 인품과 성경의 도리로 예수를 전하며 불의한 삶을 질타한다는데 너희는 반드시 그 자를 유혹하거라. 제가 남자라면 별수 있겠느냐."
엄명을 받은 미모의 기생이 길 목사 부흥회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시늉을 하고는 스스로 목사님의 부흥회에서 수발을 드는 여인으로 자청하였습니다. 몹쓸 인생이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받았으니 목사님 수발이나 들면서 일생 하나님의 여종으로 살아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길 목사님도 그녀를 귀하게 여겨 가까이 두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낮 집회를 마치고 숙소에서 웃옷을 벗고 잠시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는데, 이 여인이 이때다 싶어서 목사님의 숙소로 올라와 자고 있는 길 목사님 가슴에 살며시 기대 왔습니다. 목사님이 기겁을 해서 눈을 뜨자 여인은 말했습니다. "목사님, 소녀를 받아 주옵소서." 교태를 부리며 이렇게 말하는 여인은 평양에서 최고 수준의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 때 길 목사님이 어떻게 반응하였는지 압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여인을 한 팔로 밀어 버리자 여인은 마루에서 굴러 댓돌에 떨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한 시대에 분명한 획을 긋고 영적인 지도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사람은 이렇게 무엇이 달라도 달랐습니다.

"설교자는 학자일 수도 있고 목사일 수도 있고 교회 행정가일 수도 있고 또는 재치가 번뜩이는 연설가일 수도 있고 사회 개혁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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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책을 읽었다. 오동환 전도사님의 소개로 읽게 된 책, 책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이제 신학의 세계에 입문한 나로서는 정말 필요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목회자로서 살아간다는게 머리가 아닌 몸으로 부딛칠수록 너무나도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면서 과연 내가 이 직책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하던 때에 하나님께서 전도사님을 통해 이 책을 보여주신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책의 저자, 김남준 목사님은 세례 요한의 삶을 토대로 말씀을 증거하신다. "아이(세례요한)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고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눅1:80) 이 말씀을 1.자라며 / 2.심령이 강하여 지고 / 3.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이렇게 세 개로 나누어 각각에 대해 증거하신다. 즉, 무엇이 자랄 것인가? 심령이 강해 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빈들에 있다는 건 어떤 뜻인가?

첫째로, 신학생으로서 혹은 신학교 후보생으로 무엇이 자라나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목사님은 육체적 준비(건강과 순결)/지성적 준비(성경과 학문)/인격적 준비(성품과 생활)/정서적 준비(사랑과 열정)에 대해 말씀하셨고, 둘때로, 심령이 강하여 지기 위해 영적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마지막으로는, 기다림의 미학으로 요한이 이스라엘에게 나타날때까지 빈 들에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앞으로 하나님의 빛을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마치 양초가 수많은 공정과정을 거치는 이유가 결국 한 순간 불을 태우기 위한 것처럼 우리 역시 공정과정을 경험하며 빛을 태울 순간을 위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좋은 말씀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신학생으로서 신학교에 있는 동안 결국 하나님과 신실한 교제 속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신학생은 죽어라 공부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 부분만큼은 내가 적극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물론,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실력을 길러야 한다. 내가 신학교에 가기 전에 아버지께서 강조하시던 것, 목회자는 실력과 인품 모두 갖춰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성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실력에만 치중하다보면 영성을 놓치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영성이 살아있으면 자연히 지성적으로 건강한 노력도 열정이 일어나게 되리라 믿는다.

비록 나라는 하나님의 도구가 앞으로 쓰임받기 위해 겪어야 할 공정과정이 아무리 길다고 할지라도, 또한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럽다고 할찌라도 마지막에 빛을 태울 소망을 생각하면, 그리고 그 빛이 어떤 빛인가 떠올린다면 결코 포기하게 할 수 없게 만든다. 마치, 히말라야 14개 봉 정상을 세계 여성 최초로 오른 한국의 오은선 산악인이 때로는 동료가 죽어나가고 고산병에 시달리고, 희박한 산소에 호흡이 그렇게 힘들고, 또 그 험난한 경사와 눈사태와 눈부라의 위험을 뚫고 정상에 오르는 이유가 바로 산 정상에 오르면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던 고난과 고통들이 한 순간에 씻겨나가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놀라운 어마어마한 감동이 오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앞으로 그리스도 인으로서 힘든 고통과 고난을 감내한 이 모든 시간시간들이 빛을 태우는 그 한순간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놀라운 감동과 기쁨이 따라올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신학교에 들어온 지금, 다른 무엇보다도 정말 진실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실제적인 행동들이 필요하고, 하나님께 신실하려는 몸부림이 가장 필요하리라 믿고 또 그렇게 살련다. 간디가 자신의 인생을 가지고 진리실험을 했듯이, 그리스도의 진리를 부여잡은 나 역시 이 진리가 바로 이 세상에 진정한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라는 것을 내 삶을 통해 증명해 보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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