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랜은 목회를 준비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필요를 공급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었지만, 한편 자신이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도록 물질적, 지적, 영적으로 부지런히 채워가길 하나님께서 기대하신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쉐퍼 부부의 고민 :
1. 기독교인은 항상 성결과 사랑을 견지해야 하는가? 이것은 한 개인의 힘으로 이룩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개인의 삶 속에서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자신의 결점과의 싸움은 그리스도와 내주하시는 성령께로 점점 더 가까이 나오게 한다.
2. 사람들이 내리는 모든 결정이나 행동들은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이 예정하셨다거나 하나님이 야기시킨 결과인가? 이런 견해로 보면 선택은 진정한 선택이 아니다. 그 견해의 극단적 표현으로는 기도가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이미 그가 무엇을 할 것인가 혹은 안 할 것인가를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 요청하는 기도를 할 수 없고 그런 요청들은 역사상 어떠한 차이점을 드러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감사 기도나 회개 기도를 드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입을 닫아 버릴 것이다. 여기에 대해 쉐퍼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결정되지 않은 채로, 예정되지 않은 한 인간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이것은 20세기의 개념으로 그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상이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20세기 사상은 인간을 예정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있는가? 우연히 발생한다는 것은 우리가 원인을 모른다는 의미일 뿐이다. 몇몇 사람들이 모든 것은 우연에 의해서 형성된 시간, 에너지 그리고 물질로부터 유래된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자신들이 실재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은 시간, 에너지 혹은 물질의 기원을 알지 못한다.
프랑스 10프랑에는 프랑스 말로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혁명과 계몽주의 기본 사상의 표어가 새겨져 있다. 프랑스에 있어서 계몽주의는 실제적인 것이다. 즉 이성은 인간의 구세주로 격상되었고 성경은 하나님의 자리에 대신 놓여졌다. 이성은 신격화되어 ‘신’이라고 불리웠다. 프랑스 혁명은 미국 혁명 직후에 발생하였다. 프랑스 혁명은 결정적으로 반기독교적 반교회적 특징을 지니고 시작되었고 내적 유혈 투쟁과 나폴레옹의 독재로 막을 내렸다. 프랑스의 프랑은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을 지닌 인간은 하나님에 반대해서, 혹은 하나님 없이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켰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인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의 기본적 전제이다. 우리는 ‘자유, 평등, 박애’에 이르는 유일하고 참된 길이 사회에서 성경적 원리들의 솔직한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기독교는 사회 내에서, 상당한 자유가 존재하며 성경의 하나님에 의해서 규정된 윤리적 한계 내에서 자유로운 사상 토론이 허용되는 다원주의를 추구한다. 기독교인들은 사상의 시장에서 기독교적 사상들의 우월성을 입증할 수 있다고 믿는다.
20세기 초에 자유주의자들이 핵심적인 교단들을 탈취하였던 것을 묘사한다. 전격적으로 자유주의적인 가장 핵심적인 교단들의 지도자들, 신학교 당국자들, 그리고 교수들과 함께 그들은 내부로부터 성경적인 기독교를 전복하려는 계획을 수행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따르기보다는 그들의 목자로서 자신들을 따르도록 만들었다.
자유주의의 추종자들, 즉 신정통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과정 신학은 한 가지 공통점을 지녔다. 그들은 성경이 주장하는 바가 진실된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오류 없이 말하지 않으셨다고 믿는다.
교회의 기초는 중요한 모퉁이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성경이다. 위에서 언급한 신학들이 사용한 어떤 방법에 의해서 기초가 파괴되거나 불신될 때, 진정한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 신앙의 확증 가능성도 파괴된다. 또한 기독교의 실천도 약화되거나 파괴된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은 무엇을 할꼬”(시11:3)
자유주의자들 중 일부는 성경을 과학과 역사 영역 뿐만 아니라 종교와 윤리적인 영역에서도 신뢰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우연은 실재하는 본질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우연은 물질과 에너지가 어떻게 존재하며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물질과 에너지의 지속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어야 한다. 그러나 어떠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였으며 또 그 세상은 어떠한 세상인가?
1. 동양이나 범신론적 사고는 세상이 그들의 신의 존재와 본질의 연장이라고 말한다. 즉 물고기와 새들과 바위와 마찬가지로 당신도 나도 신이라고 본다. 몇몇 과정 신학에서 이것은 또한 신이 우리처럼 자라며 개선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모든 것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동양 종교들에서는 그들의 신이 하나이며 하나가 신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특별한 것들은 단순히 환상일 뿐이다. 당신과 내가 환상이라면 누구의 환상인가, 우리 혹은 신들의 환상인가? 한 동양의 구루는 살인이란 환상만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에 살인은 괜찮다고 제안하였다. 우리가 단지 환상이기 때문에 우리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객관적으로 창조되지 않았고 어떤 중요한 것을 하기 위한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았다. 우리가 돌을 던질 수 있지만 돌로 인한 물결은 진짜가 아니다.
2. 이성의 시대, 즉 계몽주의 시대에서 이신론자들은 세상이 우월한 시계공에 의해서 도안되었기 때문에 완벽한 시간을 맞추는 시계와 같은 우주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본다. 모든 것이 수학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관점으로 시작하여 이신론자들은 세상이 하나님의 관여 없이도 기계적으로 진행되도록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였고 조절하였다는 억지 결론을 내렸다. 이신론자들에 따르면, 하나님은 기도 응답의 하나님이 아니며 그는 우리의 삶에 연관하지 않는다. 우주는 하나님 없이 매우 잘 돌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는 인간이 시계의 기계적인 부분, 즉 우주적 기계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은 시계의 일부로서 시계 안에 고정되어 있고 하나님은 시계 외부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위대한 시계 제조자에 의해서 창조된 것처럼 자신의 기능을 완수하도록 결정되어 있다. 인간은 자유 의지도 없으며 책임도 없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없다. 인간은 째깍째깍거릴 뿐이다. 여기서 인간은 무가치하다. 인간은 역사에서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이신론은 우주나 인간의 존재에 대한 합당한 설명이 아니다.
3. 성경에 따르면 태초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객관적인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을 때 부여되었던 재질들을 사용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인간을 거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객관적이고 유한한 세상, 혹은 우주를 창조하셨다. 이것은 세상이 시간 속에서 시작되었으며 세상은 시간 속에서 끝날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세상은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의존한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자신의 능력 외에는 다른 어떤 능력에도 의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시작도 끝도 없다. 하나님이 무한하고 우주가 유한하다는 의미헤서 인간과 창조물 사이에 커다란 간격이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 인격과 비인격 사이, 즉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와 피조물 사이의 거대한 간격이 있다. 하나님이 무한하고 인간이 유한하다는 점에서 하나님은 인간과 세상과 다른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은 양자 모두가 인격적이며 세상은 비인격적이라는 의미에서는 세상과 다른 존재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아는가? 그것은 참으로 무한하시며 인격적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에 의해서 창조되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유한하지만 인격적인 인간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인간은 성경에 그분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우리가 성경에서 아는 하나님, 즉 하나님의 본질과 특성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바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것과 우리 자신의 보질과 소망에 대해서 아는 것과 일치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즉 한 인격이 다른 인격에게 말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여기 있는 이유를 안다. 하나님은 진실되게 말씀하셨지만 완전히 다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참된 과학이 있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더 알기 위해서 우주를 연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모두 다 말씀하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본질과 특징에 대한 참된 것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유한하지만 하나님은 무한하다. 그러므로 영원토록 존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더욱 배운다 해도 우리는 그에 대해서 다 알거나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인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악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다. 악은 유혹자(사탄)가 유혹했던 여인에 의해 유혹받았던 남자에 의해서 유래되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문제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반역하였고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행했다는 의미에서 윤리적인 문제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문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상관없이 그리고 성경에서 계시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의 통치와는 별개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삶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가 전체 피조물의 행복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며 이 세상에서 살아갈 이유를 준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분리시키는 죄에서 구출될 수 있는가? 하나님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구속자, 즉 구세주가 되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이유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을 이루었고 구원의 일부는 참된 지식을 알려 주고 있지만 그것이 구원의 총제성은 아니다. 우리는 은총(값없는 선물)에 의해서 구원받는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죽었던 하나님의 아들, ‘값없는 선물’을 이해하였으면 우리는 이 ‘값없는 선물’을 받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는 하나님의 구원을 신앙의 빈손으로 받을 때 우리는 우리의 죄에서 구원을 받는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 얻어진다.” 우리는 신앙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구원받지 않았다.
기독교인이 되기 위한 네 가지 결정
1. 당신은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는가? 당신은 성경의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 한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 성경의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인 무한하며 인격적인 하나님이다. 거룩, 정의, 사랑, 진리, 영, 영원, 시작과 끝이 없으신 분, 창조되지 않은 분, 항상 존재하는 분.
2. 당신은 죄인이며 자신의 힘으로 이러한 죄를 제거할 수 없다는사실을 인정하는가? 하나님께 반역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위에 자기애를 두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 심리적 ‘죄의식’이 없을 수도 있으나 진정한 윤리적 죄는 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제거하고 죄를 극복해야 할 필요를 인식해야 한다.
3. 당신은 예수가 공간과 시간과 역사 속에 임했다고 믿는가? 예수의 가르침, 동정녀에게서 태어남. 죄가 없으심.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 부활. 재림약속.
4.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경배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개인적인 주와 구속자로 받아들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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