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내가 초등학교 때였을 당시였다. 삼풍백화점이 붕괴 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것이. 분명 어릴 때였기에 기억이 가물가물할만도 한데, 희안하게 붕괴 관련한 몇 가지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분홍색 외벽의 건물이 마치 썪어 문드러진 걸레조각 마냥 너덜너덜하게 무너진 것하며, 16일인가?만에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파편 속에서 어떤 여성이 구출된 장면 등등.

지금까지 나는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것은 부실시공에 따른 것이며, 그러한 부실 시공은 아마도 어떠한 정경연합 세력의 만행과 비리때문에 의한 것이었을 것이라는 추측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 나의 추측에 대해 풍부한 배경설명을 해준 것이 바로 소설, '강남몽'이었다.

강남몽이라는 제목은 왠지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 이유인 즉슨, 강남몽이 왠지 우리가 중고등학교때 읽은 구운몽과 제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운몽의 중심 주제가 일장춘몽이었듯이 강남몽 역시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릴 허무한 꿈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시대적 배경이나 등장 인물들이 실제 시대와 인물들이 가미됨으로서 사실성을 더해 주기 때문에 좀 더 소설을 읽는 우리에게 있어 이해나 영향력이 더 크게 와닿는듯 하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바야흐로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민국이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된 이후에도 여전히 미국의 알력으로 인해 친일본계 주도세력이 여전히 우리나라의 경제와 정치를 주도해가게 된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일부 강경한 인사들은 대한민국 국가형성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면서 친일본계 세력들을 청산하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바로 잡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광복이후에 6.25 사변과 민주화항쟁을 겪으면서 국내에는 정치, 경제, 그리고 폭력이 유착된 여러가지 사회 모순과 불순이 자행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로인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이 사회는 여러가지 병폐와 악습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있으며, 또 어떤 시각에서보면 오히려 그 때보다도 오늘 날 그 상황이 더 심각해진 것 같기도 하다. 한데,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모든 것의 근원에는 인간의 탐심과 생존욕구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들인 박선녀, 심남수, 김진, 김창수, 홍양태 모두 어떻게 보면 시대가 낳은 이단아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각자의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지 자신들이 그런 인물들이 되어야 겠다고 목표로 삼고 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진과 김창수같은 경우도 이후에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되어서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노라고 말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제도와 장치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 스스로의 중심생각이다.

여기서 짚을 점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어차피 대부분의 인간은 본능에 따라가며 살기 때문에 그런 인간들을 바로 잡아줄 바람직한 혹은 올바른 사회적 제도와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인간은 본능에 충실하다. 아무리 종교나 교육을 통해서 높은 이상과 가치관을 심어준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본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단적인 예로 성직자나 교육자라고 해서 도덕적으로 꼭 우수하다고 볼 수 없지 않은가. 물론, 표본집단으로 따지면 성직자가 조직폭력배에 비해 도덕적양심에서 훨씬 우수한 수치를 나타내겠지만, 결코 정비례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게 상식이다. 왜냐면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율법적으로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사도바울이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불완전한 인간을 보조해줄 제도적 장치와 기구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또 하나는 사회적 제도나 장치에 역시 인간들이 주축이 되어서 자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 스스로의 생각과 가치관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추구하는 이상과 삶의 중심 가치가 바로 서게 될 때 비로서 제대로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본능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은 본능에 의해서만 살아가는 동물과는 다르다.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이 있고,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달리 얘기하면, 깨달을 수 있는 힘이 있다. 소설에서도 - 안타깝긴 하지만 - 마지막에 가서 (대부분 꼭 끝에 가야지 깨닫는 경우가 많다) 박선녀가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이끌어오던 힘. 즉 탐심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면서 이런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구나를 깨닫게 된다. 즉, 이처럼 인간은 이성이라는 특수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동물과는 달리 올바른 것을 깨달을 수 있으며 본능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이 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을 본능대로 살도록 내버려두면 그 끝은 허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본능대로 살지 못하도록 제도적,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 스스로 그것을 깨우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절실하다. 그것은 곧 교육이 아니겠는가. 올바른 것을 가르치는 교육, 본능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 그것이 가장 필요하다. 그리할 때에 이 사회가 그리고 각자의 삶이 허무한 것이 아닌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 올바르다는 것에 무엇이 기준이 될 수 있는가?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