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italism: A Love Story, 2009



“Property monopolized or in the possession of a few is a curse to mankind.” – John Adams, 1765
“No man ought to own more property than needed for his livelihood; the rest, by right, belonged to the state.” – Benjamin Franklin
“I sincerely believe … that banking establishments are more dangerous than standing armies.” – Thomas Jefferson, 1816
“It’s class welfare, my class is winning, but they shouldn’t be.” – Warren Buffett

What can I say about the capitalism?

자본주의. 일단, 자본주의에 대한 일반의식부터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본주의라는 용어에 대해서 특별히 혐오감을 느낀다거나 부정적인 인상부터 떠올리지 않는다. 왜냐면, 일단 자본주의에서 추구하는 것이 곧 내가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기에 그렇다. 자본주의의 매카니즘은 간단명료하다. 이긴사람이 다 가져간다는 논리. 그리고 그것이 정당한 것으로 인식되는 것.

사람은 누구나 가지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두 손에, 혹은 마음 속에 무언가로 채우려는 깊은 욕망이 있다. 그런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합리적으로 정당하게 사회적으로 충족시켜주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라고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누군가가 짚었듯이,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모래위에 쌓은 성과 같을 수 밖에 없다. 욕망이라는 기반 위에 세워놓은 사회가 어떻게 건강하고 튼실하게 유지되어 나갈 수 있겠는가 말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자본주의라는 사회체제는 단연코 폐지되어야 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일단, 자본주의에 대한 일반인식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갑의 제도지 결코 을의 제도일 수 없다. 결코 가진자의 제도지 가지지 못한 자의 제도일 수 없다. 기회의 평등, 아메리칸 드림, 형평성, 공정성 등은 허울좋은 명칭일 뿐이지 실상은 부의 재생산, 규모의 경제, 적자생존 등이야 말로 자본주의의 참 모습이며 실체임을 자각해야 한다. 선조들이 뜨거운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평등'이란 가치는 오늘 날 다시 '자본(돈)'이라는 굴레에 빠져 신개념 불평등, 신개념 계급사회를 초래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류 역사는 불평등에서 자유로운 적은 없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역사는 힘의 역사라고도 표현했듯이 역사 속에서는 항상 '힘 있는 자'가 있었고, 그 힘의 형태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양한 모양과 모습으로 변이되어 나타났을 뿐 항상 그 뿌리는 함께 했음을 보게 된다.

따라서 '자본'은 오늘 날의 시대적 산물이며, 변이된 힘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즉, 오늘 날 우리가 직면하는 불평등도 과거로의 후퇴가 아니라 인류역사가 항상 그래왔듯 마치 그림자와 같은 혹은 암적인 존재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게 더 정확하겠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했듯,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간에는 서로간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갈등이 불가피한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또한 언제나 그러하듯, 힘이 없고 가지지 못한 자들이 항상 다수라는 것이다. 그들 한 명 한명은 저항할 능력도 힘도 없지만, 그들의 힘이 응집될 때는 가진 자들도 두려워할 엄청난 힘을 소유하게 된다.

말하다보니, 민중 저항을 통한 사회 개혁 쪽으로 흐르는 것 같은데, 내가 말하고자 함은 결코 그것이 아니다. 사회 통합과 화합의 가능성의 장을 열고 싶은 것이다. 오늘 날 시대는 그 누가 뭐라고 해도 풍요와 번영의 시대인 것은 확실하다. 전세계에서 생산하는 식량은 전세계인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큼의 풍부한 양이다. 다만, 그것이 필요한 곳에 원활히 흘러가지 못하는 사회구조의 문제라고 본다. 왜냐면 그런 사회구조를 만들고, 또 운영하는 사람들 또한 갑의 입장이기 때문에 그렇다.

겸손이라는 것은 결코 낮은 자의 것이 아니다. 낮은 사람은 어째도 낮을 수밖에 없다. 대신에 참된 겸손은 높은 자의 것이다. 마치 예수그리스도가 모든 권세와 영광을 입으신 분이지만 종의 모습으로, 즉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으로 오신 것처럼 말이다. 높은 자가 낮아지는 것. 노블리스 오블리제. 그것이 오늘 날 사회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가치며 노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에 대한 인식이 바뀔 필요가 있다. 물질과 재물에 대한 관점이 바뀔 필요가 있다. 재물이 우상이 될 수 없다. 재물이 힘이 될 수 없다. 이 사회는 자본이 아닌 다른 것으로 그 기반을 두어야 한다. 재물은 수단과 도구가 될 뿐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기업의 참된 윤리는 이윤창출로 그치는 것이 아닌, 이윤창출을 통한 사회의 질적 양적 발달을 꾀하는 것, 즉 사회로의 환원이라고 볼 수 있다.

소위 우리가 일컫는 미국 사회가 처음 들어설 때, 미국인의 정신은 적어도 이렇지 않았다. 남을 죽여서 내가 더 많은 돈을 축적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꿈꾸지 않았다. 저마다 일할 자리가 있고, 주어진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고, 먹고 사는데 넉넉한 안정된 수입을 받으면서 더 살기 좋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로서로 화합하고 협력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 꿈꾸던 사회였다.

한데, 이 사회가 왜 이렇게 변질되었느냐.
결론적으로 이 사회의 정신이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결코 썩어질 것으로 우리의 정신과 사회의 기반을 두어서는 안된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사랑과 평화를 기반으로 이 사회가 일어서야 한다.

결국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요, 성경적 가르침 아닌가.
왜 미국은 더 이상 성경을 사회의 기반으로 두지 않는가.
진리가 너무나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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