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10.1-21 "A good shepherd"

1       "I tell you the truth, the man who does not enter the sheep pen by the gate, but climbs in by some other way, is a thief and a robber.
2       The man who enters by the gate is the shepherd of his sheep.
양의 우리를 문으로 들어가면 목자, 담 넘어 들어가면 도둑 ... 여기서 양은 나를 뜻하는 것이라고 하고 양의 우리라 함은 인간 세상을 지칭하는 것이라 하면, '문'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리고 '목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도둑'은 누구일까?

3       The watchman opens the gate for him, and the sheep listen to his voice. He calls his own sheep by name and leads them out.

여기서 watchman은 또 누구? 그리고 문을 열어준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목자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오면 안되나?  또,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게다가 목자가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고 하는데 그 의미는 뭘까?  끝으로, 왜 목자는 그들을 우리 밖으로 불러 내는가?

4       When he has brought out all his own, he goes on ahead of them, and his sheep follow him because they know his voice.
우리 밖으로 끌어낸 목자는 양들 앞에 서서 양들을 이끌고 간다... 그리고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따라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5       But they will never follow a stranger; in fact, they will run away from him because they do not recognize a stranger`s voice."
그리고 양들은 절대 목자 이외의 음성은 따라가지도 않고, 오히려 도망가기까지 한다고 하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

6       Jesus used this figure of speech, but they did not understand what he was telling them.
예수님의 이 비유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그럼 이제부터 그 속뜻을 알기 위해 진리의 세계로 탐험해 봅시다!! 고고!! 

7       Therefore Jesus said again, "I tell you the truth, I am the gate for the sheep.
예수님께서 친절하게도 비유를 설명해 주시네.  이야기 속에 나온 '문'은 바로 나다!!! 즉, 양들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야. 

8       All who ever came before me were thieves and robbers, but the sheep did not listen to them.
그리고 이런 말을 하셔.  나 이전에 왔던 자들은 도둑과도 같은 자들이다.  즉, 양의 우리를 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담넘어 들어온 자들이라는 얘기지. 그건 무슨 말일까?  양을 인간으로 그리고 양 우리를 인간 세상으로 이해한다고 하면, 즉, 예수님 이전에 양들을 이끌기 위해 온 무수한 사람들...그 속에는 성인들도 있을 것이고, 철학자, 왕, 군주, 정치인, 장군, 예언자, 랍비, 선생, 등등의 소위 리더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야. 그들도 인간을 이끌기 위해 앞장서서 노력했던 사람들이지. 그리고 분명 그들 중에는 존경받고 칭송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또 비난받고 욕듣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야. 하지만 예수님은 한 마디로 딱 잘라 그들 모두 '도둑'이라고 명명해 버리셔. 어떻게 들으면 정말 어이가 없는 발언이지. 아니, 예수라는 자가 누구기에 이런 말을 해? 지가 얼마나 잘났기에 그런 오만불상한 말을 해? 아마 그런 말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반응을 보일꺼야.  오늘 날로 얘기하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존경을 받는 링컨 대통령이나 간디, 마더 테레사 아니면 주변에 훌륭한 목사나 종교인들을 '도둑'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그걸 듣는 사람들은 당연히 어이가 없겠지... 아니, 인류를 위해 이토록 좋은 일을 하고, 또 많은 사람들한테 좋은 영향을 준 그 사람을 어떻게 도둑이라고 할 수 가 있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꺼야. 

한데, 왜 예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거기에 답을 하기 전에 말씀에 나온 한 가지를 더 짚고 넘어가면, 예수님께서는 그런 도둑의 목소리를 양들이 듣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  이건 또 도대체 무슨 말일까?  세상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리더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잖아?  그래서 소위 내가 존경하고 배울만한 사람의 트위터에도 follower가 돼서 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들으며 때로는 그것을 따라 살려고 하지 않는가 말이지.

한데, 예수님은 딱 잘라서 양들이 도둑들의 말은 듣지 않는다고 하셨어. 왜 그러셨을까?

9       I am the gate; whoever enters through me will be saved. He will come in and go out, and find pasture.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셔.  내가 바로 문이다. 그리고는 다음에 말씀하시는 구문이 바로 이 비유의 핵심이 아닐까 싶어.  나를 통해서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나를 통해서만이 우리를 들어오고 나갈 수 있고, 그리고 초목을 찾을 수 있다. 

즉, 이 말씀을 통해 유추해 보건데 여기서 말하는 리더란 바로 영적인 리더를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세상적 지식, 지혜 그리고 육신은 세상의 통치를 받고 그 영향력 안에 있지만, 세상의 리더들이 사람들의 영혼을 생명으로 결코 이끌 수 없으니까 말야. 만약 그렇게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도둑'과도 다름 없을 꺼야.  게다가 앞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그런 도둑들의 말을 듣지도 않을꺼야. 

한데, 사실 또 많은 사람들이 거짓 영적 리더의 말에 현혹되는 경우를 생각하게 되면서 예수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가 곱씹지 않을수가 없어. 그래서 생각하던 중에 깨달은 점 한 가지는, 여기서 말하는 양이란 바로 목자의 양이라는 점이지. 또는 목자가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준 양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이 말인 즉슨, 모든 인간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벌써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은혜로 선택하시고 구원으로 이끄실 인간들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해. 따라서 벌써 하나님을 만났고, 그분의 선택하심을 받고, 구원을 받은 인간들은 주변의 어떠한 거짓된 유혹이 온다고 할찌라도 요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에서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10      The thief comes only to steal and kill and destroy; I have come that they may have life, and have it to the full.
도둑은 양을 훔쳐서 죽이고 파괴하기 위해서 오지만, 예수님은 양에게 생명을 주고 양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오신다고 하셨어. 이 말을 다시 영적인 범주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면 거짓 영적 리더들이 사람들을 유혹하여 데리고 간다고 할찌라도 그들이 구원으로 이끌 수 없기 때문에 결국에 가서는 그들의 영혼을 더 피폐하게 만들고 병들게 만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했어.

11      "I am the good shepherd. The good shepherd lays down his life for the sheep.
예수님께서 자신은 선한 목자라고 자칭하시는데 그 이유로 드는 것이 양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기 때문이라고 하셔.

사람은 지극히 이기적 동물이잖아. 아무리 좋은 목적과 선한 의도를 지녔다고 할찌라도 그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그것이 결국 자신을 이롭게 하기 위한 행동이었음을 발견하게 돼. 더군다나 사람은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한 순간 방심해 버리면 개인의 이기심이 극치로 치닫게 되고 이는 결국 자신이 이끄는 추종자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게 되고 따라서 추종자들은 병들고 죽게 만들지. 인간의 이기심을 가장 확연히 보여주는 대목은 바로 죽음 앞에서라고 볼 수 있어. 언젠가는 어차피 다들 죽을 목숨이지만 왜그리 죽음 앞에서는 그리도 작아지고 초라해 지는지... 그것은 결국 이기심의 발로가 아닐까?  

바로 이것을 나타내는 구절이 바로 다음에 나오지.

12      The hired hand is not the shepherd who owns the sheep. So when he sees the wolf coming, he abandons the sheep and runs away. Then the wolf attacks the flock and scatters it.
13      The man runs away because he is a hired hand and cares nothing for the sheep.

여기서 삯꾼hired hand이란 무엇일까?  도둑이 아니라 hired hand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을 생각해 보기 전에... 위의 구절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항상 도망만 다닌다고?  

하지만 때로는 영웅?들의 모습 속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상을 보기도 하잖아.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해지고 본인은 결국 죽는다던가, 아니면 이순신 장군처럼 '생즉사 사즉생'을 외치며 사생결단의 초연한 의지로 전장을 누비는 사람들도 있고 말야, 또 무언가 대의를 도모하기 위해서 희생을 자초하기도 하지. 이런 실례 때문에 아직도 성선설, 성악설 논쟁에 해답이 나지 않기도 하고...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삯꾼hired hand이라는 믜미를 이해해보면 좋을 꺼 같아. 

삯꾼이라 하면 보수를 받고 일하는 사람을 뜻하지. 즉, 이 말은 이해관계가 있는 것으로 내가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함을 통하여서 내가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것을 뜻하지.  그리고 사람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분명히 이익이 되는 것을 쫓을꺼야. 

하지만 여기서 이익이란게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심적, 정신적 이익도 포함시켜야 해.  

소위 영웅적인? 죽음을 선택했던 그들... 그들 역시 이해관계에 따른 행동이 아니었을까?  다만, 그 내용이 훨씬 더 복잡해서 헷갈리긴 하지만 말야...

가장 파격적인 예로 들어 보자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오지로 부족선교를 갔다가 죽임을 당한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보통 어떤 생각을 할까?  

와, 이 사람은 정말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득찬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정말 이타적인 사람이구나.  우리는 추호도 이 사람을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

하지만 과연 그럴까?  (물론, 너무도 그런 분들을 존경하고 나 역시 그런 삶을 희망하지만...) 그 분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가 소위 말하는 순교를 당한 것은 그것 역시 이기심의 발로라고 볼 수 있어. 분명히 그가 오지로 선교하러 간 것은 돈을 많이 벌러 간 것도 아니고, 예쁜 색시를 찾으러 간것도 아니었고, 또 죽음을 맞이한 것도 오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구원하기 위해서였기에 이기적이라고 보기가 매우 힘들지만, 그의 죽음을 불사한 선교의 열정은 바로 하나님께 인정받고자 한 그의 지극히 고차원적인 이기심이었다고 볼 수 있어.  앞서 얘기한 영웅들의 스토리 역시 우리는 이타적이라고 말하지만 그 역시 고차원적인 이기심에 의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해.

여기서 이기심이라고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 다만, 이기심은 어디까지나 이기심일 뿐이라는 것이지. 

이타심이라는 것은 바로 자기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 (즉, 본인에게는 전혀 돌아올 것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을 뜻해.  바로 예수님의 경우가 이 경우지.  예수님은 하나님이셔.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그 분께서 왜 굳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인간의 종된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까. 마음만 먹으시면 인간을 한 순간에 다 멸망시켜 버리시고 다른 존재를 창조하실 수도 있는데 말야. 또 인간을 위해 죽는다고 이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이미 어불성설 아닌가.  "역시 넌 최고야!!"  자화자찬을 하기 위해 그런 일을 하셨다?  음... 하나님이 혼자 놀기 좋아하시는 그런 분이실까?  

아니라는 결론하에, 따라서 그런 예수님께서 본인의 삶을 희생하시면서까지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함은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이타심임을 발견하게 돼.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만이 삯꾼이 아닌 즉,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완벽한 선한 목자라고 볼 수 있으며 그렇게 완전하기 때문에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인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지 않나 싶어.

14      "I am the good shepherd; I know my sheep and my sheep know me --
또 다시 말씀하시지. "나는 선한 목자다!"  (세번째..예수님은 삼세번을 참 좋아하셔..)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셔.  나는 내 양을 알고 또 내 양은 나를 안다. 

앞서 말했듯이 여기서 양이란 벌써 구원을 받은 (즉,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 이미 깨달은 사람)을 지칭하고 있어. 즉, 선택받은 사람들이지. 9장과 연결짓자면 영적으로 눈뜬 자들인 셈이야.  

15      just as the Father knows me and I know the Father -- and I lay down my life for the sheep.
내가 생각하기에 이 구절이 하나님이 예수님 되시고, 예수님이 하나님 되시는 일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하기가 힘든...그리스도론Christology를 나타내는 구절이 아닌가 싶어. 따라서 11-13절에 대해 장황하게 살펴보았던 하나님의 전적인 이타심을 나타내기 위해 등장한 말씀이라고 생각해.

16      I have other sheep that are not of this sheep pen. I must bring them also. They too will listen to my voice, and there shall be one flock and one shepherd.
예수님은 참 좋은 분이셔...계속해서 영적인 눈을 뜨게 할 사역들을 하시겠다는 말씀이지.  그렇게 되면, 그들 역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 그 엄청난 진리를 알게 되고,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을 살게 된다는 말씀.

17      The reason my Father loves me is that I lay down my life -- only to take it up again.
18      No one takes it from me, but I lay it down of my own accord. I have authority to lay it down and authority to take it up again. This command I received from my Father."
음.. 이 구절을 이해하려다 보니 앞서 12-13절 이해에서 말했던 자화자찬에 대한 입장이 달라져야 할 필요성이 생겼어. 그 이유는 이 구절이 바로 자화자찬 또는 자기사랑, 자기인정을 말하는 대목이 아닌가 싶어서... 즉, 하나님된 예수님, 예수님된 하나님께서 자신이 그렇게 희생했다는 점에 대해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구절이야. 게다가 자신이 양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다시 생명을 얻기 위함이라는 점에서...이 역시 이해관계를 위해서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어. ㅠㅜ 
물론, 본인이 본인을 인정하기 위해 하는 행동을 이기심이라고 이해해야 하는가 아닌가라는 점에서도 입장과 해석이 달라질 순 있겠지.

19      At these words the Jews were again divided.
20      Many of them said, "He is demon-possessed and raving mad. Why listen to him?"
21      But others said, "These are not the sayings of a man possessed by a demon. Can a demon open the eyes of the blind?"

여전히 이런 이상한 소리를 하시는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한 것은 당연한 것일테야.  정말 중요한 것은 - 오늘 말씀에서도 누차 나왔지만 - 이런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예수님의 양이 되어야 하지. 그리해야 우리가 그분이 누구신가 알 수 있고 또 예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실때 그분의 목소리를 따라갈 수 있게되니까 말야. 그럼, 우리가 어떻게 그분의 양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전적으로 하나님된 예수님의 선택에 달려있어. 그분이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의 눈을 만지시고 우리의 눈을 뜨게 하셔야만 가능한 일이지.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고. 


기도:
하나님 오늘 말씀 묵상 가운데 이해가 힘든 부분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허락해 주세요. 

적용:
예수님의 목소리에 더 귀를 세우고 그분을 따라가는데 게을러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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