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어째서 다시 유다로 가시려는 것일까? 유다를 떠나셨던 이유가 바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려는 것을 피했던 것인데 말야 (10.31-19)... 그런데 다시 그곳으로 가려 하시는 이유가 뭘까? 도대체 예수님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어... 그 이유를 다음 구절에서 말씀하고 계신데 그건 더 이해하기가 어려워...
9Jesus answered, ‘Are there not twelve hours of daylight? Those who walk during the day do not stumble, because they see the light of this world. 10But those who walk at night stumble, because the light is not in them.’
?? 갑자기 빛 얘기는 왜 다시 하는 것일까? 물론, 앞에서 예수님께서 본인이 바로 '빛'이라고 말씀을 하셨지. 8.21절에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라고 말씀하셨고, 9.5절에 보면,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한데,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더 valid한 포인트는 daylight에서 찾을 수 있을꺼 같아. 9.4절에 보면,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지. 즉, 예수님께서 비록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베다니 즉 유다지방으로 향하겠다는 것은 나사로를 살림으로써 나타내게 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겠다는 말씀이시지. 다시 말하면, 나는 죽음도 두렵지 않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라면 나는 죽음도 전혀 두렵지 않다!라는 예수님의 의지와 하나님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또 한가지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묵상은...바로 twelve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어. 꼭 낮이라는 것이 12시간만을 나타내는건 아니잖아? 겨울에는 낮이 짧아져서 낮이라고 볼 수 있는 시간을 8, 9시간으로 볼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여름에는 낮을 15, 16시간으로 볼 수도 있는데 왜 낮을 12시간이라고 굳이 말씀하셨던 것일까? 여기에 대해 나는 12제자가 떠오르더라고. twelve disciples!! 예수님은 하나님이셔서 사실 모든 것을 알고 계신분이지. 심지어 자신의 죽음까지도... 나중에 보면 자신의 죽음이 누구를 통해 언제 일어날지에 대해서도 다 알고 계시다는걸 보게돼. 따라서 유다 지방으로 다시 회향하실 때는 이미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아셨을 것이 분명해. 따라서 예수님께서 공생의 삶을 마감하신 후에 그분의 사역과 사명 - 하나님의 일 - 을 계속해서 감당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12제자들이었던 것이지.
따라서 9절 앞부분을 다시 이해해보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꺼 같아.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니, 예수님! 유다지방에 왜 돌아가시려고 하시나요? 그곳에 가면 당신을 죽이려는 사람들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죽으려고 그러세요?"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무슨 말이냐. 생명이 있는 한 하나님의 일을 해야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설령 내가 죽더라도 하나님의 일을 계속할 너희들이 있지 않느냐?"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Those who walk during the day do not stumble, because they see the light of this world. 10But those who walk at night stumble, because the light is not in them.’
즉,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와 함께하면 너희들 역시 죽음도 두렵지 않을 것이지만 나와 함께 하지 않으면 두려움으로 가득할 것이다." 라고 말씀한신게 아닐까?
11After saying this, he told them, ‘Our friend Lazarus has fallen asleep, but I am going there to awaken him.’ 12The disciples said to him, ‘Lord, if he has fallen asleep, he will be all right.’
이 말씀을 보니 제자들이 앞에서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신지 이해를 못한게 분명하지?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향이 있듯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나사렛이 잔다고 표현하자 그것을 곧이 곧대로 콜콜 자는 잠으로 애써 이해하고는 예수님한테 그러면 안 가도 되는거 아니냐고 반문하지. 한데, 내가 여기서 "애써"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어. 희랍어와 영어 둘 다 모두 잠이란 것을 죽음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야. 따라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그 표현에 대해 사실 충분히 알아들을 법도 한데 그들이 유다지방에 가기 싫으니까 어떻게든 "애써"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지.
이것만 봐도 제자들이 아직 멀었다는 걸 보여주지. 즉, 그들이 아직 스스로 빛 가운데 걸어갈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싶어. 다시 말하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일에 사로잡혀 있기 보다는 여전히 세상적인 기준과 본인의 유한한 이성적 판단에 얽메여 있는게 아닌가 싶어. 나중에서 계속 나오지만 이런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훈련시키시고 결국 나중에 가서는 성령으로 그들을 도와주셔서 그들이 결국 하나님의 일에 사로잡히게 됨을 보게 되지.
13Jesus, however, had been speaking about his death, but they thought that he was referring merely to sleep.14Then Jesus told them plainly, ‘Lazarus is dead. 15For your sake I am glad I was not there, so that you may believe. But let us go to him.’
예수님께서 다시 친절하게 제자들에게 설명하시지. "얘들아, 내가 말한 잠은 드르렁드르렁 자는 잠이 아니라 죽음을 얘기했던 것이란다."
그런데 15절 말씀을 보니, 앞서 11,12절에서 묵상한게 방향을 좀 잘못 잡은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왜냐면, 15절 말씀을 통해 유추해 보건데, 제자들이 잠을 죽음이 아닌 단순한 잠으로 이해했던 것은 예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가 아닐까 싶어.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15절에서 내가 나사로한테 바로 가지 않아서 그가 죽은 것이 잘된 일이다. 덕분에 너희들은 내가 사람의 죽음까지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지 않느냐. 즉, 내가 하나님 됨을 너희들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이해돼.
16Thomas, who was called the Twin,* said to his fellow-disciples, ‘Let us also go, that we may die with him.’ 끝으로 열두 제자중 한 사람인 도마가 현문우답 아니 동문서답을 하지. 동료 제자들에게, "그래, 가자가자! 가서 예수님이랑 같이 죽자!!"
아니, 이렇게 말하면 지금까지 예수님이 설명한게 뭐가 되냐? 이 말씀에서의 핵심은 죽음이 아닌 바로 생명이었어. 나사로에게도 생명을 주러 가는 말씀이었고, 예수님과 제자들 역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생명의 길로 가는 것을 계속 강조하시고 말씀하셨는데 결국 마지막으로 제자 중에 한 사람이 하는 소리가, "자 그럼 우리 죽으러 갑시다!" 라고 말하니...참...
적용점:
하지만 나 역시 제자들과 다른 점이 뭐가 있을까? 못하면 못하지 결코 잘난게 하나도 없을꺼 같다. 따라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로는
1.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끊임없이 품어주시고 가르치셨던 것처럼 나에게도 동일하게 안아주시고 계속 키워주시고
2. 성령님을 제 마음, 제 삶 가운데 보내 주셔서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이 되기 원하고
3. 그리하여서 늘 빛 가운데 거하며 하나님의 일 - 영혼 구원,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일 - 을 하는데 있어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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