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에서는 한 가지에만 좀 집중해 보려고 해.
25-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은, 23절에서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네 오빠 나사로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라고 말하자 24절에서 마르다가 예수님께, "네 알아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겠죠."라고 말한 것에 대한 대답으로 하신 말씀이지.
사실 이 당시에 유대인들에게는 마지막 때(종말) 있을 부활에 대한 신앙이 보편적으로 퍼져 있었어. 이유는 바로 그들이 읽던 구약성경에 그렇게 나와있기 때문이지. 다니엘 12.1-2절을 보면, "At that time ... many of those who sleep in the dust of the earth shall awake, some to everlasting life, and some to shame and everlasting contempt." 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게 돼. (유사 말씀으로는 이사야 26.19; 에스겔 37.1-14)
따라서 마르다 입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네 오빠가 다시 살아날 꺼야" 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 예수님이 왜 당연한 소리를 하고 계시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이제 전혀 새로운 대답을 주셔. "내가 곧 부활이고 생명이다. 따라서 나를 믿으면 죽어도 살 수 있고,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완전히 혁신적인 대답이 아닐 수 없어. 그렇잖아.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잘? 아니 전혀 안되는 부분이기도 해. 예수님을 믿으면 실제적으로!!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 완전 불가사의, 뚱딴지 같은 소리잖아. 아무리 예수님이 대단한 존재라고 해도 그분을 믿는다고해서 내 생명이 끊어지지 않을 수가 있는거지?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지...
또 한 가지 이 말씀에서 주목해 보고 싶은 부분은, 자세히 살펴보면 말씀에서 비록 두 가지를 얘기하고 있지만 실상은 한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고 생각해. 앞문장에서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산다고 그랬는데, 죽어도 살기 위해서는 살아서 예수님을 믿어야 가능한 것이잖아. 왜냐면, 죽어서 믿을 수는 없는거잖아. 즉, 이 말은 뒷문장에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해.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이 믿음은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이 마르다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결국 죽기 전에 나사로가 가지고 있었던 신실한 믿음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 그래서 나중에 나오겠지만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신 것은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죽음까지 신실하게 예수님을 부여잡은 그의 신실한 믿음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신게 아닐까 싶기도 해.
Anyway,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라는 말은 그 의미와 내용이 실로 엄청난 것이 아닐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예수님을 믿으면, 결국 나는 죽어도 사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니까 말야... 옛날 진시황제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불로초가 바로 요한복음 11장에 있었어!!
생사화복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 그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과 나를 사랑하심을 믿을 때, 그리고 나의 교만함을 회개하고, 나의 모든 생각과 마음과 삶을 오직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turning 할 때, 나사로가 죽어서도 살아난 것처럼, 내 영과 육 그리고 마음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이 엄청난 말씀!!
적용: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 이 생명의 말씀을 부여잡길 원합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그러했던 것처럼, 마르다가 고백했던 것처럼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길 원합니다. 그리고 신실하게 그 믿음을 지켜나가길 원합니다. 죽음까지도 그 믿음을 지켜나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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