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Believe in God, believe also in me. 2In my Father’s house there are many dwelling-places. If it were not so, would I have told you that I go to prepare a place for you? 3And if I go and prepare a placefor you, I will come again and will take you to myself, so that where I am, there you may be also. 4And you know the way to the place where I am going.’ 5Thomas said to him, ‘Lord, we do not know where you are going. How can we know the way?’ 6Jesus said to him,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7If you know me, you will know my Father also. From now on you do know him and have seen him.’ 8 Philip said to him, ‘Lord, show us the Father, and we will besatisfied.’ 9Jesus said to him, ‘Have I been with you all this time, Philip, and you still do not know me? Whoever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How can you say, “Show us the Father”? 10Do you not believ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The words that I say to you I do not speak on my own; but the Father who dwells in me does his works. 11Believe m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but if you do not, then believe me because of the works themselves. 12Very truly, I tell you, the one who believes in me will also do the works that I do and, in fact, will do greater works than these, because I am going to the Father. 13I will do whatever you ask in my name, so that the Father may be glorified in the Son. 14If in my name you ask me for anything, I will do it.
역시나 오늘 말씀도 powerful!!! and 알쏭달쏭!!
지난 번 묵상 ... 노숙자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스파게티를 대접하겠다던 나의 결의는 실패로 끝났어. 스파게티까지 만들어 놓고...식탁 setting까지 완료한 다음에 Tenley까지 갔었으니 희안하게 노숙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더라고. 대신에 경찰들만 잔뜩 몰려 있는 것이 아마 무슨 일이 일었났던 모양이었나봐. 거의 한 시간 동안 아내와 함께 노숙자 한 명을 데리고 올꺼라고 메트로도 내려가보고 건물 안에도 들어가보고 해보고 심지어 Friendship Height까지 갔었으나 결국 포기하고 말았지. 어디 첫 술에 배부를 수 있겠어? 더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다음에는 반드시 말씀 적용할 수 있길 기대해 보아~~
오늘 말씀의 키워드는 in, 그리고 second-keyword는 place라고 생각해. 녹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헷갈리거나 이후에 추가적으로 더 생각해 보고 싶은 부분이고.
여기서는 keyword 두 개만 생각해볼께. 사실 두 키워드가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
일단, 오늘 본문에서 in 이라는 전치사가 총 19번 나오는데 12절에 in fact에 들어가는 in을 제외시키면 18번에 걸쳐 나오는 in이 모두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어.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우리 역시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또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어. 더욱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예수님이 하셨던 일들 - 영혼 구원, 생명 구원 - 역시 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지.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행위로 알 수 있다는 말씀도 나오는 것이고. (야고보서)
여기서 in의 의미를 좀 더 살펴보고 싶은데, 막연히 혹은 추상적으로 "안에 있다"라고 생각하면 안 될꺼 같애. in 이라는 단어에는 기본적으로 항상 두 가지 대상을 내포하고 있지 않나 싶어. 들어가는 대상이 있으면, 들어가게 될 대상이 있지. 쉽게 생각해서, 내가 이번에 한국에 간다고 하면, 일단 "나"라는 존재가 있고, 또 "한국"이라는 대상이 있지. 또는, 악어가 강에 들어간다고 말하면, "악어"라는 대상과 "강"이라는 대상이 있고 말야. 정말 당연한 소리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떤 하나의 대상이 다른 대상으로 들어가게 될 경우, 들어가는 대상은 들어가게 될 대상의 속성에 맞춰야 하는 필연적인 결과가 일어나게 돼. 즉, 내가 한국에 들어가면, "나"라는 존재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기후, 환경, 문화, 언어, 법, 등에 맞춰야 하고, 악어가 강에 들어가면, "악어"라는 대상은 강이 가지고 있는 속성, 즉 부력, 물의 흐름, 물의 온도, 등등에 맞춰야 하는 것처럼 말야. 따라서 내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말은 단순히 지나쳐버릴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예수님꼐서 가진 속성에 나를 맞춰야 하는 필연적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면 내가 했던 일들을 너희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이전 장에서는 포도나무 가지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던 것이고 말야.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생각해서, 내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예수님이 보이셨던 열매가 내 삶 속에는 맺히지 않는다면 내가 과연 예수님 안에 있는지 깊이 있게 반성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 예수님께서도 교회만 다닌다고, 주여주여 입으로 외친다고 하늘나라에 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잖아.
또 여기서 한가지 더 주목할 점은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있다는 말은 둘의 객체가 같은 존재가 아닌 이상 성립될 수 없는 표현이라고 생각해. 왜냐면, 첫째, in의 개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들어가는 대상은 부분이 아닌 전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둘째,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빌리자면, 모든 대상은 저마다의 고유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substance) 그 속성은 다른 대상과 결코 대체가능할 수 없기 때문이지. 즉, 나라는 사람과 한국이라는 나라가 결코 동일 할 수 없듯이 말야. 물론, 특성 (accident) 이 같을 수는 있지. 예를 들어, 한국말이라든, 한국의 문화라든지 한국인인 나와 한국이라는 나라가 공통적으로 지닐 수 있는 특성은 있지만 그럼에도 앞서 얘기했듯이 두 대상이 결코 같을 수 없다고 봐야해. 따라서 어떤 대상 A가 다른 대상 B에게 포함될 때에는 A라는 대상 전체가 전혀 다른 속성을 지닌 B에게 포함된다는 의미인데, 그 B의 전체가 다시 A에 포함된다는 말은 A와 B가 같은 대상(substance)이 아닌 이상 성립 될 수 없는 표현이라고 봐. 따라서 이 본문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Christology를 밝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두번째 키워드 place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은데, 예수님께서 아버지 집으로 가시는 것은 그곳에 사람들이 거할 곳place을 마련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어. 그렇기 때문에 거처를 마련하신 후에는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오겠다고도 말씀하셨고. 그런데 여기서 아버지 집이란 과연 무엇이고 또 어디일까? 같은 질문을 (의심많은...좋게 얘기하면 이성적인) 도마도 했어. "거기가 어딘가요? 우리가 거길 어떻게 알고 가나요?"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구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라고 대답하셔. 정말 아리송송하지. 확답은 아니겠지만 예수님의 대답을 통해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아버지의 집"이란 물리적, 수학적 공식이나 이성적, 개념적 위치로 이해한다기 보다는 오로지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만 알 수 있는 믿음의 영역이 아닐까 싶어. 그렇다고 "아버지의 집"이라는 것이 실체가 전혀 없는 몽유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지만 그곳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믿음"에 의해서만이라고 이해해보아. 다시 말하면, 목적지가 분명히 있는데 그곳에 가는 길은 일련의 논리적, 사유적 개념으로 만들어진 지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또는 그 분 안에 우리가 들어갈 때in, 그 길을 우리도 걸어갈 수 있고, 결국엔 아버지의 집까지 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또는, 예수그리스도라는 (색)안경을 써야만 보이는 길이라고도 이해해 볼 수도 있고.
어찌됐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집에 우리의 거처를 마련하시기 위해 가셨다고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어. 예수님이 우리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가신 그 길은 흔히 아는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 그리고 부활의 길이었어. 다시 말하면, 죽어지지만 다시 사는 것, 썪어지지만 열매맺는 것을 나타내지. 따라서 아버지의 집이 무엇을 그리고 어디를 지칭하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거할 곳엔 생명이 있고, 열매가 있는 곳이 아닐까? 관련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dwell 이라는 표현이 본문에 두 번 나왔더라고. 첫번째는 2절에 우리가 거할 곳을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하셨고, 두번째는 10절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에 사용되었어. 이것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과격한(과도한) 해석일지는 모르겠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실 거처는 다름 아닌 하나님 아버지가 거주하는 곳 ... 따라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의 길을 따라가면 하나님 아버지가 거하시는 곳에 우리 역시 거하며, 우리가 거하는 곳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거하셔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하나님의 일들을 일으키시며 역사하시는 능력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12절에 "You will do greater works than these (if you believe in me and follow my path), because I am going to the Father (to make a room for you)."라고 말씀하셨지 않나 싶고.
말씀 기도:
예수님 안에 진정 거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속성,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르기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마련해 주신 거처에 거하는 제 자신이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일보다 더 큰 일을 감당하게 되는 하나님 능력의 통로가 되길 원합니다.
말씀 적용:
말씀 기도를 매 정각마다 읽고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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